▲ 나경수 전자.정보인협회 부회장

‘자기가 나쁘다’고 하는 죄의 의식을 우리는 죄의식(罪意識)이라고 한다. 이 의식을 키울 만한 문화환경, 예를 들면 기독교적 문화와 양심의 내면화(內面化)가 생김에 족할만한 내성력(內省力)이 필요하다. 정신발달에 의하여 어린 시절의 단순한 외향적(外向的)인 마음에서 분화(分化)되어 흔히 생겨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법률이나 도덕의 법칙에 어긋나는 부정한 행위, 종교적으로는 신(神)의 계시나 계율을 무시하고 이에 따르지 않는 방만한 태도를 말한다. 인간은 원래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항상 갖는 것으로 어렸을 때에는 이와 같은 욕구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우는 것으로 반격(反擊)을 한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욕구는 차츰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위 사회에 폐해를 끼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사회가 벌(罰)을 가하게 된다. 어린이일 때에는 부모와 교사, 혹은 친구들로부터 벌을 받는데 이 때부터 벌에 대한 두려움의 의식이 생긴다. 그런데 이러한 죄의식은 ‘내가 나빴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네가 나빴다’라고 비난 받을 것을 두려워할 따름이다.

이것이 ‘내가 나빴다’라는 올바른 죄의식으로 성장하기에는 사회환경과 문화환경, 예를 들면 문화적 정서나 종교적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심(良心)의 내면화(內面化)가 생기기에 충분한 내성력(內省力)이 그때까지의 단순하였던 외면적(外面的)인 마음에서 분화(分化)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근본으로 하는 사회적(社會的) 금지력(禁止力)이 내면화한 것이라 생각하여, 이상아(理想我) 또는 초자아(超自我)라고도 한다. 따라서 죄의 의식이 강한 사람에게서는 ‘하고 싶은 짓을 하고 싶다’는 내심(內心)의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양심은 강하게 자기에게 향하여 ‘네가 틀린 것이다’라고 대항하며 공격함으로써 필경에는 내면 분열이 일어난다.

이런 유형(類型)의 사람은 자기에 대하여 엄격함과 동시에 타인에 대하여서도 무자비하게 용서가 없는 준엄한 인품(人品)일 수가 많다. 그러나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이라고 깊이 느끼는 이른바 죄업(罪業)의 체험(體驗)과 자가가 한 것이 잘못되고 있었다 혹은, 나빴었다고 느끼는 죄과(罪過)의 체험은 모두 죄책의식(罪責意識)으로서 근원적으로는 이와는 별종의 것이라 생각된다.

 사전적 의미로 죄(罪)는 허물, 법에 의해 형벌을 받을 만한 비행으로 정의되고 있다. 양심이나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 또 불교에서는 과보를 낳는 인(因)을 지칭한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에프스키(F. M. Dostoevskii: 1821-1881)의 장편소설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인데, 1866년 <러시아 보지(報知)>에 발표되었다. 세계 문학의 최고 걸작의 하나로 평가되고 세계 각국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즐겨 읽히고 있다.

근대도시의 양상을 띠었고, 작품속에 등장하는 말단 관리 마르메러도프가 말하듯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로 들끓는 베테르부르크의 뒷골목이 무대이다. 가난한 학생 라스코리니코프는 끈질긴 병적인 사색속에서 <선출된 나폴레옹적인 강자(强者)는 인류를 위해 사회의 도덕률을 밟고 넘어가 권리를 갖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진드기와 같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이는 것으로 이러한 그의 사상을 감히 실천에 옮긴다.

그러나 이 행위는 뜻하지 않은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어 어느덧 “인류와의 단절감”에 고민하는 비참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민완(敏腕)의 예심판사 포르필리의 혐의에는 논리적으로 대하면서도 죄의 무거움에 참을 길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희생과 고뇌를 이겨내고 살아가는 성스런 창부(娼婦) 소냐를 고백의 상대로 골라잡아 필경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한다.

또 욕정(欲情)을 절대화한 배덕자(背德者) 스비드리가이로프의 수수께끼 같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자기 이론의 추악을 비추어 보고, 드디어 자수한다. 그리고 법의 심판을 받고 시베리아로 유형된다.

작자는 기독교적 신앙의 입장에서 서구(西區)의 합리주의와 혁명사상을 단죄(斷罪)하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작품은 그러한 의도를 훨씬 초월하여 시대의 폐색(廢塞)된 상황속에서 묻혀 사는 인간회복으로서의 원망(願望)을 호소하는 깊은 인도주의(humanism)의 향기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