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원전 수주이후 국내에서도 사용 후 핵연료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의 발목을 잡아 우리나라의 대내외 원전 활동을 옥죄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목소리가 높다. 2014년에 끝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을 위한 양국 정부간 논의도 이미 시작됐다. 최근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이 백악관과 국무부 에너지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한 의견교환을 한 바 있다. 정운찬 총리도 세계 원자력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 핵연료 재활용과 고준위 폐기물 감축을 위한 기술개발을 선언하고 나섰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우리로선 ‘먼 산의 불’이 아닌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국내 원전 임시저장시설에 쌓아 놓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가 벌써 1만 톤을 넘어섰다.(한 기당 연평균 680t가량 발생) 그나마 2016년이면 임시시설이 완전 포화상태가 된다. 미국 프랑스처럼 발전소 밖에 중간 저장시설을 시급히 확보해야 할 처지다.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에 의하면 제4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원전이 추가로 지어져 총 32기의 원전이 운영되면 사용 후 핵연료의 누적치(수명기간 동안)가 무려 4만7천톤에 달한다.

사회적 갈등과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폭발성’을 감안할 경우, 정부의 사용 후 핵연료 종합대책이 적기에 나와야 한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경제성, 환경문제. 기술수준, 수용성, 각국의 정책방향, 핵 확산 가능성, 에너지 수급 등 다양하고 미묘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책오차 발생 가능성이 큰 사안이다. 이렇듯 수많은 주체들과 요소의 수용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자칫 정책 결정이 표류하거나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이런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용량을 확충하고 중간저장을 연계 추진하는 등 ‘완충장치’ 마련이 선제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는 파이로 건식처리를 포함한 미래형 원자력 시스템 개발 기술과 처리 기슬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핵연료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기술은 순도가 높은 플루토늄이 추출되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로 이용할 가능성이 없다. 기존 기술과 달리 고속로와 연계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규모를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독성 지속기간을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이고 부피도 20분의 1수준이다. 정부는 개정 협상에서 사용 후 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조항을 포함시킨다는 방침을 세워 놓은 상태다. 이 기술이 허용되면 골칫거리인 사용 후 핵연료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 한미원자력협정은 외교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우리나라가 핵연료 수급의 안정성과 핵주기 정책의 유연성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6개 원자력 수출국가중 핵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농축 또는 재처리를 독자적으로 할 수 없도록 금지된 유일한 나라다. 이웃 일본도 수십 년에 걸쳐 미국과 끈질긴 대미 설득과 로비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받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도 분명 타결의 길이 있다. 치밀하고 정교한 준비, 신뢰와 교류를 통한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는 일본의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원전 르네상스 시대의 주역이 되려면 ‘핵 책임’의 의무와 권리를 갖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원자력 연구와 발전에 족쇄로 작용하는 외부 제약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핵 확산 가능성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없애고 굳건한 신뢰를 얻는 것이 선결 과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도 귀착점도 거기에 있다. 평화적 원자력 이용 실적을 꾸준히 쌓아 나가고 안전성을 입증시키는 각고의 노력을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세계 3대 원전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것과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등 자율권을 확보하는 것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