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아 ‘애물단지’로 전락한 구역전기사업 제도가 거꾸로 가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정부는 14일 차관회의를 열고 구역전기사업자가 하절기에 한해 전력시장에서 전기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제도의 실효성을 살리지 못해 제도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구역전기사업자에게 또 다른 ‘특혜’를 부여하는 이번 조치로 인해 전력시장이 더욱 교란될 것으로 보여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이미 불거진 제도의 맹점을 치유하지 않고 ‘특정 기업군 살리기’에 매달리는 정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현 제도권의 구역전기사업이 도입의 명분으로 거론됐던 취지를 살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분산전원과 효율성의 대표주자 격으로 여겨져 온 구역전기사업이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제도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면서 사업 전반에 걸쳐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판 목소리만 높은 게 현실이다. 2007년 10월 KDI와 전경련은 ‘규제개혁 종합연구’를 통해 특정 사업자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왜곡된 전기요금체계를 통해 사업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구역전기사업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 지경위 국감에서도 이종혁 의원 등이 당초 취지와 달리 분산전원 및 에너지효율 효과가 거의 없는 제도를 폐지하고 발전사업자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바 있다.

분산전원·실효성 ‘실종’

구역전기사업자의 존재 가치는 전기사업법이 규정한 대로 자체 발전기를 돌려 특정 지역의 주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이 발전기를 세우고 한전으로부터 싼 전기를 받아 비싼 값으로 주민들에게 되파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현재 사업허가를 받은 후 사업권을 포기한 사업자는 13개사에 달하고 운영중인 8개 사업자들도 발전기를 돌리는 것 보다 한전 전기를 단순재판매해 차익만 실현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니 혀를 찰 노릇이다. 국가적 측면에서 보면 발전설비의 중복 투자가 이뤄져 막대한 국가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전이 부족전력과 발전기 고장에 대비해 100% 백업전원을 별도로 갖추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발전설비에 투입되는 규모는 2조2,000억원에 달한다. 구역전기사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온갖 난맥상의 백화점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정부 조치대로라면 구역전기사업자는 하절기(5월부터 10월)에 발전기 가동 의무가 면제된다. 이로 인해 구역전기사업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셈이다. ‘봉이 김선달식 사업’이라는 비아냥을 받아온 사업자들에게 윗 돈을 얹져주는 격이다. 최대수요전력(피크)이 걸리는 하절기에 특정 지역을 맡아 전기 공급을 제대로 해줘야 구역전기사업의 도입 취지인 분산전원의 효과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뒷짐만 지고 발전회사의 전기를 팔아 ‘돈만 챙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발전설비를 갖추고도 피크부하를 분산시켜 수급에 기여하지 않는 구역전기사업자 제도는 무의미하다. 정부가 시행령까지 만들어 구역전기사업자에게 독점적 지위와 특혜를 줘 살리기에 나서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로 작용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원천적으로 맹점 투성인 구역전기사업에 뛰어드는 신규 사업자가 늘어난다면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할게 뻔하다.

결국 국민부담만 가중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구역전기사업자의 생존을 위해 무리한 지원에 급급한 탓에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만 가중된다는 점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구역전기사업자는 수익이 18% 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이나 이는 교차보조 재원 축소(404억원 추정)로 이어져 전기 요금 인상의 빌미로 작용할 것이다. 그동안 교차보조를 없애고 전압별로 개별 요금체제의 도입을 천명해온 정부가 교차보조 구조를 앞장서 심화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 원가를 반영하는 전기요금체제로의 개편이 이뤄지는데 장애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특히 열 쪽의 손실을 전기 부문으로 전가해 에너지원간의 교차보조를 꽤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가 어떤 명분으로 부담을 떠안는 국민을 설득할 것인지 자뭇 궁금해진다.

2004년부터 시행된 구역전기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출발부터 예견됐다. 발전 형태가 열병합인 구역전기사업의 경우 북미나 북유럽처럼 열 수요가 많아야 수지타산이 맞는 구조다. 구역전기사업자가 주 타겟으로 삼는 주택이나 상가 단지 등은 하절기에 열수요가 없어 사업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지만 이 당시에도 정부가 밀어붙여 제도를 도입했다. 더구나 정부는 구역전기사업자는 신규지역에 최대 전력수요의 70%이상 공급설비를 갖추면 사업자등록이 가능하도록 문턱을 낮춰 ‘특혜’시비를 낳았다.  현재는 그 것보다 후퇴해 60%이상의 설비만 구비하면 진입이 가능하다. 일본이 구역전기사업자에게 공급수요의 100%를 책임지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비상시에만 전력회사의 전기를 수전하도록  제도의 치밀도를 높인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특별한 경우 전력회사로부터 수전을 받더라도 10~20%의 할증요금을 내도록 규정해 공급신뢰도에 대한 책임을 사업자가 지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 설계와 접근이 달라도 너무 다른 표본으로 꼽을 만하다.

더 큰 재앙 초래할 수도

정부가 제도 초기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구역전기사업에 ‘올인’하는 행태는 이해하기 힘들다. 2007년 5월에 지경부 장관에게 보고한 ‘집단에너지사업 중장기 혁신 방안’에도 구역전기사업의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자체 분석한 바 있다. 지경부 내부에서도 에너지이용효율을 제고하고 분산형 전원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구역전기사업의 유지를 고집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물론 정부가 정책의 신뢰도를 금과옥조로 삼아 기존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한편 일리가 있다. 정부 말만 믿고 뛰어든 기업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도입 취지에 어긋나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면 원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정책 실패의 오명이 두려워 ‘구렁텅이’로 빠지는 실책을 연발하는 것은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구역전기사업의 폐해를 재인식하고 제도를 폐지하던지 보완에 나서야 한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구역전기사업에 맹목적인 지원책을 쏟아 븟는 것은 ‘깨진 독에 물 붙기’이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는다. 일각에서는 구역전기사업자가 대부분 대기업이라 정부가 끌려 다니며 특혜만 남발한다는 의혹을 받는 것도 어찌보면 자업자득의 결과다. 필요하다면 구역전기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설비의 가치를 살려 발전사업자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구역전기사업자의 민원에 얽매어 퇴행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인가는 순전히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정부의 냉철한 판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