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녹색성장위원회 위원)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고 당시 감회를 소개했다. 문 교수는 요즘, 학교 안팎에서 강의를 하느라 눈 코 뜰 새가 없다. 그가 한국형 스마트그리드의 ‘전도사’로 평가를 받으면서,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문승일 교수는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비전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스마트그리드가 아니면 해법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문 교수는 “2030년이 오면,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운전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스마트그리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한국형 스마트그리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문 교수는 한국형 스마트그리드가 ▲저탄소에너지 이용 극대화 ▲전기에너지 이용 효율의 극대화 ▲소비자 참여 확대 및 새로운 서비스제공 ▲전력시스템 신뢰도 및 품질 증대에 있다고 말한다.

저탄소 에너지는 풍력, 태양광 등 녹색에너지의 비중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증가해 저탄소 에너지의 이용을 극대화하고, 합리적 전력소비, 예비율 증가, 추가발전설비 건설 최소화를 통해 전기에너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품질 전력공급, 소비자 선택권, 전기자동차 충방전 인프라 구축 등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양질의 안정된 전력 공급 및 대규모 정전 방지 등으로 전력시스템의 신뢰도와 품질을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제주도 실증단지와 관련, 문승일 교수는 한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KEPCO의 리더십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KEPCO가 직접 투자해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신기술의 현장 적용을 의무화 하는 등 세계적인 스마트그리드 기술개발에 나서야 한다”며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위한 계통의 보강에 조기 투자하는 등 조기실용화와 미국 등 해외송배전 회사에 M&A 진출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해외진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 교수는 또 “제주도 실증단지에 KEPCO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세계 최고의 스마트그리드를 구현해야 한다”며 “세계 시장을 향한 KEPCO의 기술력 홍보공간으로 제주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승일 교수가 밝힌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내용을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스마트그리드란?

-스마트그리드는 전력망+IT망의 융합이라고 보면 된다. 기존 전력 산업외에 통신, 가전, 네트워크, 자동차, 건설 등이 한데 버무려지는 것이다. 결국 스마트그리드는 산업구조를 재편할 것이다. 이는 기업의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생활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왜 스마트그리드인가?

-전력산업 분야에서 스마트그리드가 필요하다고 해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비전으로 삼았다. 이 역시 생활과 경제 문화 전반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보자. 전기자동차가 보편화 될 경우, 생활과 문화 전반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전력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온실가스를 어떻게 저감할 수 있겠냐를 고민하면서 스마트그리드라는 개념이 튀어 나온 것이다. ‘혁명적’ 차원에서 국가 인프라를 바꾸지 않으면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를 구현하기 힘들다.

▲도입 후 기대효과는?

-먼저, 전력소비의 합리화로 발전 설비의 투자를 줄일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되면 낮과 밤에 따라 수요의 편차가 큰 현재의 전력수요패턴이 달라질 것이다. 낮과 밤이 비교적 균등한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스마트그리드가 없으면, 녹색 에너지도 없다. 풍력발전은 기후에 따라 출력변동의 편차가 워낙 커 예측이 불가능하다. 제주도에도 더 이상 확대할 대안이 부족하다.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되면, 또 소비자의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사용 공간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다른 전기를 공급받게 되고, 실시간대로 제공되는 전기요금에 따라 가장 싼 시간에 해당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현재 제기되고 있는 수도권 차단용량 초과 문제, 전압 안정도 문제, 송전선로 조류 불균형 문제 등 송전계통 문제는 선로 증설로는 해결이 불가능 하다. 그 해결책이 바로 스마트그리드다. 전력공급네트워크, 충방전시스템, 요금정산 네트워크, 전력계통 안전운영시스템 등이 요구되는 전기자동차도 바로 스마트그리드가 해법이다.

▲이종 산업간 융합이 필요한데?

-스마트그리드와 통신 산업을 놓고 보자. 스마트그리드는 기존의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기계와 기계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전력과 IT기술의 융합이 곧 스마트그리드다. 뭐라고 불려도 상관은 없다. 이 융합을 잘 이끌어 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당사자가 바로 정부다.

스마트그리드가 태동하고 있는 지금, 기업들 스스로도 스미트그리드를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를 구현하는데는 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밑에서부터 일어나는 이런 현상이 긍정적 ‘신호’를 주고 있다.

포스코를 예로 들어보자. 포스코는 이미 1달 전 자체적으로 포스코만의 스마트그리드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포스코의 특성상 전기로를 작동해야 한다. 스마트그리드 시대에 대비해 포스코의 전기 관련 부분을 검토, 포스코에 맞는 스마트그리드를 추진하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전기자동차 충전소가 생각보다 빨리 도입되면, 자동차 업계도 전기자동차를 더 빨리 만드려고 할 것이다.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시스템을 갖추고 열리는데 주저할 수 있겠는가. 최근 제주 실증단지 추진과 관련, 지금까지 전력산업과 무관했던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며 상의를 해 오고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대기업들이다.

한전 등 전력그룹사도 스마트그리드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제주도 실증단지와는 별개로 한전 등 발전자회사가 별도로 1,000억원대의 자금을 투자, 시범단지를 추진할 것으로 알고 있다. 이종 산업간의 융합, 어쩌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유리할 것이다. 벌써 그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주 실증단지가 곧 한국형 스마트그리드의 성패를 좌우할 것 같다. 실증단지가 갖는 의미와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제주도는 하늘이 내린 스마트그리드 아일랜드다. 우선 특별자치도임에 따른 제도개선이 용이하다. 또 적정 규모의 전력계통을 갖고 있어 시스템 구축과 계통 운영이 용이하다. HVDC 2회선과 연계돼 계통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다양한 운전 조건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풍력과 태양광 등 녹색에너지 사업이 용이하다. 연구개발 인프라는 물론, 항공과 해상을 이용한 교통조건이 좋다. 여기에 자전가도로, 그린카, LED, 사무실녹색화 등 관련 사업과의 연계가 가능하다. 세계적인 녹색 청정 지역의 이미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도를 국민들을 위한 녹색성장시대의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세계 시장에 대한 홍보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늘이 내렸다는 표현을 썼다.

제주에 건설중인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 실증단지는 기업들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초기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제주에 건설되는 실증단지를 성공시켜 전 세계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
지난 7월 G8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스마트그리드 선도국가로 지정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스마트그리드의 플랫폼으로서 스마트그리드 선도국가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제주도 실증단지는 전 세계 유수기업을 끌어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스마트그리드의 표준화 리더십 공간으로 제주도를 키워야 한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스마트그리드 기술이 전 세계 시장으로 확산될 것이다. 수출산업화의 시작이 바로 표준화다.

▲한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 본다면 전력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과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합작한 회사가 나올 수 있다. KEPCO삼성, KEPCO현대 등. 스마트그리들 추진하는 데 있어 한전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전이 국가 유틸리티 중심의 회사였다면, 앞으로는 비즈니스에 뛰어 들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KEPCO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KEPCO 브랜드는 그 신뢰성을 높게 인정받고 있다. 또 한전이 지금까지는 발전소 건설 위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왔는데, 앞으로는 시스템을 팔아야 한다. 디지털변전소, 배전자동화 등이 단독 혹은 병합된 시장을 노려야 한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먼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현 단계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로 변동요금제(실시간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한전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의 계통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계통계획부터 스마트그리드를 고려해서 계획해야 한다. 발전소를 더 지어 전력수급을 해결하는 수요예측은 이제는 안 된다. 발전소를 더 지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것인지,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그리드가 본격화 되면, 화력발전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일 수 있는 최대한의 정책을 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체적인 정책들로 화력에 대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5개 화력발전사도 이런 시그널을 잘 받아 들여 발전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그려 나갈지 검토해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러면, 발전설비 투자가 감소되는데 투자 감소 비용을 스마트그리드에 투자해야 한다.

▲스마트그리드의 선결조건의 가격의 현실화를 강조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에너지다소비 구조를 변혁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된다고 해도 실제로 전기요금은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는데 있다. 1차 에너지원을 활용해 생산된 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하는 것이 1차 에너지인 가스를 때 난방을 하는 것보다 더 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니 결국 소비자는 더 저렴한 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전력요금의 현실화가 필수다. 핸드폰을 예로 들어보자. 단순히 통화를 하던 기능에서 지금은 여러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장착돼있다. 전력요금 현실화의 전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전기요금이 현실화된다고 해서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기존 시스템이 줄 수 없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