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출장에는 ACEEE라는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전력 부하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다 보니 전압과 주파수에 따라 변하는 부하모델 연구를 통해 부하 구성에 따라 계통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부하 구성은 측정을 통해 알기는 어렵고 여러 관련 자료의 힘을 통해 아는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전력회사에서 주관하다보니 마루[첨두; peak] 부하를 삭감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는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이 부분은 전력회사에 맡기고 정부는 주로 효율향상 등과 같은 시장원리가 적용되는 많은 사업에 힘을 쓰고 있었다. 부하 삭감과 같은 부하관리는 효과는 크고 가치가 바로 눈에 띠는 반면에 효율향상은 상대적으로 눈에 띠지는 않지만 한번 하면 계속 진행되는 특성을 갖고 있고 선투자 비용이 크다. 따라서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보급되면 정책으로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 돼 시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내용에 기후변화협약, 신재생에너지, 가스수요관리, 탄소배출권 거래 등 다양한 과제를 주제로 하는 컨퍼런스였다.

전기 분야가 아니라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대학원생과 참여해 본 결과 결국은 대단한 학회구나라는 결론을 맺으며 우리도 이러한 모습으로 학회를 운영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ACEEE의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아실로마(Asilomar)라는 장소는 컨퍼런스 전용 공간이었다. 매우 아름다운 태평양 해변에 멋진 조경을 하고 있었고 발표장이 여기저기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편한 복장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2. 등록인원이 697명이어서 식사 때 이 인원이 순서대로 앉아서 격의 없이 식사하면서 관심사를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특별한 자리가 없었다. 정부고위관리와 컨퍼런스 주최자, 전력회사 사람, 일반 회사 사람 등 모두 평등한 원탁의 자리였다.

3. 발표자는 본인이 경험한 것을 위주로 결과 중심적으로 발표했다. 발표 중에 스스로가 이해가 모자라는 것은 청중에게 문의도 하면서 발표가 끝까지 진행된다. 이때 진행과 반대되는 의견은 나오지 않아도 나중에는 서로 굉장한 토론이 벌어지는데 서로 우기려는 모습보다는 배우려는 모습이 크게 보였다.

4. 이렇듯 실질적인 이야기가 오고가고 참가자 중 과반수가 정부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관심이 있는 분야를 쫓아다니면서 어느 발표장이나 사람이 많아 서서 듣는 경우가 많았다. 좌장도 그 분야의 권위자여서 논쟁 중에 들어와 서로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는 모습은 대가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5. 비공식 발표 세션에서는 본인이 준비한 것을 발표하기로 하고 관심사에 관한 제목을 등록데스크 옆에 적어 놓으면 본부에서 대가를 좌장으로 배정하여 진행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진행하는 좌장은 토론하고자 하는 제목을 구체적으로 분류한 후 그 자리에서 토론하고 싶은 내용을 거수를 통해 두 가지를 선정했고 참가자 모두들 스스로가 신분과 참여 목적을 말하게 한 후 토론에 들어가 진지하게 2시간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해답을 얻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초청연사 강연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권위자가 직접 발표하고 같이 일한 사람을 배석자로 하여 질의를 직접 받는 모습은 당당함 그 자체였고 질의는 발표 내용을 완전히 숙지한 상태에서 하는 모습이어서 상호 질의 대답에는 전문성이 높아 전문가의 손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외에도 컨퍼런스 주최자가 일반 발표장에 늦게 와도 아무도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주최자 자신도 앉을 생각을 안 하는 모습 등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최근 제주 대정전 문제에 관해 산업자원부와 전기학회 주관으로 전력거래소 발표장에서 전문가들의 상호 의견을 논의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도 미래가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우리도 모르는 것과 잘못한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발표하게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떠나 모두를 위한 태도를 가져 선진화를 빨리 이룩하면 어떤가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