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이탈리아 라퀄라에서 열린 선진8개국 정상회의 기후변화포럼에서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개발의 선도국가로 지정됐다. 세계를 바꾸는 7대 전환기술의 하나로 선정된 스마트 그리드를 이끌 최적의 국가로 꼽힌 것은 모처럼의 희소식이다. 전 세계는 오는 11월 15일 기후변화포럼에서 우리나라가 제출할 국가 단위의 스마트 그리드 추진계획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그리는 스마트 그리드의 청사진에 따라 전 세계의 지형이 새롭게 설계되고 짜여지기 때문에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표준화 작업에 유리한 고지에 올라 시장 선점에 기대감을 높인다. G8 비회원국인 우리나라가 미래기술의 선도국가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MB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의 간판격인 스마트 그리드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구상하는 스마트 그리드가 실현되면 에너지 소비가 연간 6%(금액 1조 8000억원)가량 줄어들고 온실가스도 4.6% 감축할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로 인해 창출되는 관련 시장 규모도 10년내에 400억 달러, 2030년에는 780억 달러로 예측될 정도로 블루오션이다.   현재 1%수준에 머물고 있는 세계 전력시장의 점유율도 스마트 그리드 제품에 힘입어 10%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20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이뤄져 50만개에 달하는 그린 일자리가 생겨나고 내수 경기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는 당대가 낳은 시대적 산물이다. 또한 새로운 세대를 여는 피해갈 수 없는 연결고리이며 미래 생존의 화두다. 정부의 계획대로 라면 앞으로 원자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60%에 이르고 태양 풍력 등 출력이 불규칙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도 11.3%로 확대될 것이다. 여기에 전기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전력망에 플러그인하면 기존의 전력계통으로는 대응이 무책(無策)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가 동력원의 자리를 지켜온 반도체 철강 선박 자동차 산업도 스마트 그리드의 진화에 맞춰 연계와 변화를 꾀하지 못하면 결국 한계를 드러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스마트 그리드가 기존의 소프트웨어처럼 단순히 현재의 전력산업에 대입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문승일 서울대교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때문에 스마트 그리드는 전력계통 전반을 바꾸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모든 기준들의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국가개조사업인 셈이다.

스마트 그리드의 선도국가인 우리나라는 이제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한 스마트 그리드와 관련된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우선적으로 11월에 스마트 그리드의 비전을 제시할 상세 로드맵을 만들어 국제협력의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구현되지 않는 개념과 기술이 물거품이듯 토착화되지 못하는 스마트 그리드는 무의미하다. 그런 측면에서 테스트베드인 제주도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를 2011년까지 차질없이 건설해 스마트 그리드의 미래 모습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마트 그리드 사업과 산업을 이끌 첨단기술 인력이 모이고 양성되어야 한다. 200만 전력계 종사자 가운데 10% 정도가 스마트 그리드 전문가로 거듭나야 국가의 프로젝트를 짜임새 있고 순조롭게 추진되고 구현될 것이다. 탄탄한 전문가가 포진된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그램을 서둘러 세워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국가 아젠다로 설정된 스마트 그리드의 급부상으로 인해 국가 경제의 중심축에 전력계가 우뚝 선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런 만큼 전력계도 개발연대기의 국가경제를 견인해온 프론티어 정신을 살려 스마트 그리드를 구현하는 최일선에서 뛰어야 한다. 노파심이지만, 스마트 그리드 초창기에 자칫 헤게모니 다툼이나 영역 싸움으로 번져 동력을 잃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 사업은 특정 산업과 기관의 독점 소유물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주도권을 잡는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며 그럴 성질의 사안도 아니다. 전력계가 먼저 스마트하게 변신하고 뭉쳐 국가 전체의 스마트 그리드사업을 리드하는 것이 국가 경제의 공동선(共同善)이며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