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정수 전력연구원 수화력발전연구소장

유행은 어느 곳에나 있다. 좋은 유행은 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연구에도 유행이 있다. 그래서 좋은 연구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그 시대의 정신과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연구에도 세대가 있고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다. ‘R&D 관리’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잘 구분했 연구개발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제 1세대 연구는 산업혁명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세대로서 개발보다는 원천기술의 연구에 집중을 했다. 제 2세대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이전의 연구를 말하는데 기업의 사업 필요성에 중점을 두어 과제를 선정하고 기술의 활용성에 더 많은 주안점을 두었다.

제 3세대 연구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로서 전체 회사 입장에서 전략적인 경영의 관점에서 연구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제 4세대 연구는 기업 내부의 다양한 조직과 기업 외부의 고객들을 연구과정에 공동으로 참여시켜 시장통합을 통한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개발이 기술혁신 뿐만 아니라 가치혁신을 동시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으로 거듭난 것이다.

최고 경영층의 각별한 관심아래 기업경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연구개발은 이제 전력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하는 중차대한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럴 때 연구원들은 더 이상 단순한 연구원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시대를 보는 눈과 미래 기술의 동향까지 꿰뚫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Gate Keeper(수문장)의 역할이자 가져야 할 능력이다.

수문장은 문 앞에서 폼만 잡고 서있는 사람이 아니다. 최근에는 수문장 교대식이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중요한 역할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연구가 단순한 장식품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수문장은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의 동향을 잘 파악해 민심을 읽고, 경제상황을 파악하고,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 특별히 국경지대와 수도 서울의 수문장은 매우 중요한 자리여서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다.

연구원들이야말로 기술 수문장(Technology Gate Keeper)들이다. 현장에서의 기술 수요와 선진국의 기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련 잡지를 늘 구독하고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하거나 발표했 기술의 추이를 예의 주시했어야 한다. 세계적인 선두 주자들과 이메일 등으로 늘 접촉하고 있어야 하고 시장의 동향에 민감해야 한다.

요즘에는 단순히 자신이 맡은 기술 분야를 논문이나 잡지를 읽고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의 변화를 읽고 미래사회의 흐름까지도 알아야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의 융합시대에 살고 있기에 우리의 관심분야를 대폭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과 영화, 연극,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은 물론 성경의 예언 까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수문장의 역할이 아니다. 멀리서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단순히 기술을 복사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기술을 혁신하고 선도하기 위했 기술의 특성을 정밀히 파악하고 상업화시기를 예견하고 실현될 확률을 예측했어야 한다. 멀리서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로드맵 공화국 시대가 있었다. 모든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미래를 예측하는 로드맵을 작성하고 그것에 의해 정책을 결정한 것이다.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미래의 기술지도인 Technology Roadmap은 기술개발 전략을 세울 때 어떠한 기준으로 어느 때에 어떠한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수립하기 위해 수많은 관련 기술의 전문가는 물론이고 경영학, 경제학 등의 전문가들도 참여해 수립해야 한다.

필자는 2002년부터 최초의 국가 전력산업의 TRM인 e-TRM의 작성에 참여했다. 화력발전분야 총괄책임자로 일하면서 많은 산학연의 전문가들과 함께 1년여의 기간을 투자하면서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 본 적이 있었다. 그 후에 2차에 걸친 수정작업을 거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나리오 기반의 TRM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미래예측에서 불확실성이 많기에 일어날 만한 미래의 상황을 전제하고 기회와 위협의 요소를 규명했 기술개발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전력연구원에서는 Business Roadmap을 작성해 기술의 사업화  시기를 분명히 하고 연구개발을 보다 성과위주로 모색하고 있다. 물론 TRM도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 분석해 작성하지만 보다 더 시장지향적으로 작성하고 비즈니스 모델까지 제시하는 것이 BRM이다. 예를 들어 화력발전소의 수명평가 기술을 TRM으로 그릴 때에는 발전소의 수명연장에 초점을 맞추어 주변기술과 관련된 기술 청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PLAN (Advanced Plant Life Assessment Network)이라는 대표적 수명평가 BRM에서는 세계적 전력시장에서의 수명평가 기술의 사업화 일정과 세계적 전력시장에서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비즈니스의 모델을 그려놓은 것이다. 사실 수명평가 모델은 BRM에서 수립한 계획이 그대로 실현이 되고 있어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로부터 기술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중에 있다.

전력연구원에는 특별한 전략적 기술 수목도, SPARK (Strategic Plan for Advanced Research at KEPRI)를 가지고 있다. 전력연구원이 전력기술을 선도하는 기관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핵심요소 기술의 확보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1998년에는 138개의 요소기술을 수립하였고 2007년도에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했 회사의 경영전략에 부합하는 190여 기술을 선정했다.

기술혁신, 그 엄청난 흐름 앞에 연구원들이 서있다. 물론 쉽지는 않은 것이지만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어서 활용되고 있으니 하나씩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