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직원의 정년이 현행 58세에서 60세로 2년 늘어나고 56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단계적으로 임금이 줄어든다. 한전 노사는 최근 이같은 방식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고 전해진다. 한전 노사는 이미 지난 2007년 3월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부속협약으로 정년연장을 전제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한 바 있어 사실상 적용시기만 남겨둔 상태였다. 올해부터 정년을 단계적으로 2년 연장하려던 한전 노사는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데다 정원의 11.1%를 감축키로 하는 등 대·내외 환경이 달라져 지난해 말 도입 논의와 시행을 1년간 유보키로 잠정 합의했었다. 노사간 단체협약을 앞두고 보직 부여 여부등 검토 사항이 많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골격이 어떻게 변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전력계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한전에 정년 연장이 받아들여진 배경의 한 축에는 연금재정 안정을 꾀하려는 정부의 숨은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지만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는 고령사회 대응 전략의 핵심 키워드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저출산과 고령사회에서 정년 연장이라는 도구(툴)를 빼고 지속가능한 고용과 노동의 관계 모델을 생각할 수 없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저출산 구조가 심화되면서 노동력 부족을 정년 연장으로 헤쳐나가고 있다. 고령자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이 기존 정년을 60세, 65세, 70세로 연장한 것은 그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산물이다.

정년연장제도를 도입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퇴직을 앞둔 직원의 수명을 단순히 연장하는 ‘산소 호흡기’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직이 주어지지 않아 뒷전으로 나 앉는 정년 연장은 무의미하며 기형적인 형태다. 급여를 적게 받더라도 조직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일한 후에 명예롭게 퇴직을 맞고 싶은 퇴직예정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해야 한다. 일하지 않고 퇴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 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현 시점에서 나이를 내세워 ‘책상’을 밖으로 빼고 주저앉히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퇴직 예정자를 천덕꾸러기로 몰 것이 아니라 당당한 현역으로 자리잡아 마지막 까지 그들이 열정을 갖고 지혜와 경험을 현장에 녹아내는 일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년연장과 함께 퇴직 고급인력이 지속적으로 희망의 일자리를 갖고 사회 공헌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노력도 요구된다. 한전 등 전력그룹사에 근무한 퇴직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오랜 기간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축적한 고급 인력이다. 이러한 고급 인력을 허투루 낭비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다. 마침 최근 정부가 전문가급 퇴직자 활용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부의 일정대로라면 내년부터 민간과 공공기관 출신의 퇴직 전문가들이 동남아 중동 등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활약을 펼칠 것이다. 이번 정부의 ‘퇴직자 해외 퍄견 사업’이 청년실업 대책에 집중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퇴직자 부문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결과적으로 노동의 사회 안전망이 허술한 우리나라도 이제는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정립해 나가면서 보다 종합적인 차원의 다양한 정책적 접근을 요구받는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