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정수 전력연구원 수화력발전연구소장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만난 친구가 있다. 실험실 한 켠에 임시 침대를 만들어 놓고 2년 동안 숙식을 같이 했다. 전공에서 실력이 부족한 필자는 친구가 잠 못 자며 풀어놓은 레포트를 새벽에 일어나 참고하며 쉽게 해결했다. 친구는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오히려 미안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군대도 같은 날 입대하고 연애도 같이 하고 결혼도 같은 해에 했다. 아기도 같이 가졌고 같은 회사에 입사하고 교회도 같이 다녔다. 그 친구는 고리원자력발전소로, 필자는 삼천포화력발전소로 발령을 받았다. 아주 절친한 친구의 영향인지 원자력발전소를 볼 때마다 더욱 친근감이 든다.

사실 원자력발전소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와 늘 함께하는 친구처럼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우리의 편리한 생활을 조용하면서도 아주 크게 돕고 있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듯이 끝없이 오르는 고유가 시대에 그래도 버티고 있는 전기요금은 원자력발전소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원자력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의와 타의로 직장을 두 세번 옮기면서 피곤했던 모양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는 원자력에 관련된 기술회사에 다니고 있다. 국내 발전소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계속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반핵여론 때문에 원자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원자력 발전사업을 하지 않게 됐다. 이러다보니 선진국에는 오히려 원자력 기술자가 부족하게 됐다. 한편 고유가와 기후변화협약 시대를 맞아 모든 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원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조력 발전소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안전성이 더 확보된 원자력발전소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전력회사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기획담당 부사장을 만난 자리에서의 화제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것이었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인지라 지금까지는 원자력발전소가 하나도 없지만 이제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건설과 운전사례와 기술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 및 후진국들이 원자력발전소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1978년 4월에 시작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로부터 축적된 원자력 발전기술이 지금 한참 꽃피우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기술의 자립에 기초해 한국 표준형 원자력발전소가 탄생했다. 표준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형이 경수로이고 발전소 출력은 100만 ㎾급으로서 안전성과 운영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고리와 울진, 그리고 영광에 있는 발전소들이 여기에 주로 해당하고 북한에 지으려고 하던 발전소가 바로 한국형 표준 발전소이다.

미국의 원자력발전소와 비교해 고장과 사고위험이 10% 이상 줄었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쟁력은 건설비용과 건설기간에 달려있는데 표준원전의 건설비용은 원자력 표준화의 대표적 국가인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며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적게 든다. 건설기간도 외국 기술의 경우보다 5∼10개월 정도 짧다. 이러한 높은 국제 경쟁력으로 중국과 동남아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의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새로이 건설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신형경수로이다. 신형경수로, APR-1400은 140만 ㎾급으로 출력은 더 커지고 안전성과 경제성이 더욱 향상되었다. 해외에서 개발 중인 신형로와 경쟁이 가능하며 많은 신기술들이 포함되어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원자로의 재질을 개선하고 중요한 기기 교체방법을 확보하여 설계 수명을 60년으로 연장하고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있다. 폐기물 처리장 확보를 둘러싸고 엄청난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지던 원자력발전 기술이 이제 기술 효자가 될 날이 멀지 않다.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에 국내 원자력발전 기술이 활약할 것을 기대해본다. 한국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