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새로운 정권 2년 차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한 해가 밝는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이 훨씬 정치적인 국가가 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 정치적이라는 것이야 더 말할 여지가 없겠지만, 어쨌든 정권 출범 초기에 비하면 오히려 지난 연말, 세상은 훨씬 정치적으로 변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 주변에서도 인사가 있었고, 또 종종 출연하던 TV 프로가 연말 갑자기 폐지되었다. 그리고 공공 부문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일부가 갑자기 위치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상당히 정치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기라는 경제활동 혹은 전력산업이라는 것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대체적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서 정치와는 좀 무관해보이기는 했었는데,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보니 이곳 역시 정치에서 피해나가기는 어려운 곳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YS 시절부터이니,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수없는 장관들과 총리들을 겪게 되었고, 그런 높은 자리는 대단히 정치적인 자리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밑의 소위 ‘전기맨’ 아니면 ‘한전맨’ 같은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정치적인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잘 못가지고 살았던 것은 오히려 내가 너무 무감각하기 때문일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한전에 있든, 아니면 발전회사에 있든, 전력그룹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때때로 지독할 정도로 소시민적이라는 정도이다. 칭찬과 보람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찍히는 것’을 훨씬 두려워하고, 어쨌든 이제 생활인으로서 어느 정도 ‘순캄가 완료되어 직장에서 내몰리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일본식의 종신고용제의 문화를 옷처럼 입고 있지만, 이 옷이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식으로 ‘네오 리베’라고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라는 좀 특수한 이데올로기에 한편으로는 친숙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의 대체적인 전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풍토라고나 할까?

가끔 이런 흐름들을 보면서 ‘닥터 지바고’라는 소설을 가끔 연상한 적이 있었다. 코마로프스키는 라라의 어머니의 정부이자, 동시에 라라를 강간하는,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인간은 혁명 전이나, 혁명 후나 늘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살았고, 혁명 이후에도 한 줌의 설탕을 가져다 연인의 딸에게 주는 탁월한 인생살이를 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영화를 처음 보았는데, 지바고와 의사이자 시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코마로프스키라는 아주 독특한 인간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결국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인가? 글쎄,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기는 했는데, 과연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올바름’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보면서, 사실 코마로프스키 같은 사람들을 좀 보았는데, 나도 용기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당신은 코마로프스키다! 이렇게 말해주기 보다는, 핸드폰 번호에서 이름을 지우는 정도 외에는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내 주위의 전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떨 때는 이들이 지향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코마로프스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니야, 저들은 그저 소시민일 뿐이야... 이렇게 날선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어쨌든 정치적이라는 것과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가진,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쉬운 질문은 아니다. 아주 기능론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전기쟁이들은 전기만 제 때 공급하면 되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사회이론에서는 유기체적 기능론이라고 부르는데, 사회 전체를 하나의 몸으로 생각하고, 각 몸의 기능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전두환 시절의 이데올로기로 대개는 분류한다. “학생은 공부를, 군인은 국방을...” 이런 식의 구호가 바로 그것이다. 속 편한 기능주의이기는 한데,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면 국가주의가 너무 강해지고, 조금만 더 심하게 나가면 민족주의 쇼비니즘이 강해진다.

그냥 시장이 시키는대로 하면 되고, 전기도 경제활동의 일부일 뿐이며, 전력회사는 수많은 경제적 주체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면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될까?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나, 전력의 공공성의 문제 혹은 생태적 가치에 대한 고려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대단히 딱딱한 생각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10년 정도 세상을 뒤덮기는 했는데, 이것도 지금 세계적 금융위기와 함께 벽에 부딪혀서 지구촌 시민들은 좋든 싫든 또한 새로운 정치적 가치와 경제주체의 마음 가짐에 대해서 생각해내야 하는 순간이 온 셈이다.

하여간 어쨌든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 성장’이라는 가치를 높이 내걸고 새롭게 녹색성장위원회를 대대적으로 설치할 것으로 알고 있다. 일종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한다면, 전기 부문에 전기의 안정적 공급에서 전기의 품질이라는 가치가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고, 짧지만 전기 후생 혹은 에너지 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전면으로 나오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생태환경의 문제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가치들은 자기들끼리 충돌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대단히 모순적인 것이라서 자체 내에서도 상충점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당장 지금만 해도 녹색 성장이라는 표면적 녹색의 가치와 원자력 발전 증설이라는 두 개의 충돌을 어떻게 해소할지, 궁금하다. 녹색이라는 특별한 색깔로 대표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원래 핵실험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형성된 것이라는 발생론적 기원들을 과연 사람들이 알고 있기나 할지?

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양 핵실험에 사람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가면서 형성된 녹색의 가치는, 원래 ‘목격자’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다. 핵실험하는 데 일련의 과학자들과 변호사 그리고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갔는데, 당연히 그들은 죽을 것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그들이 범죄라고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한 목격자가 되고자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로 암살을 당해서 죽기도 하고, 군대에 의해서 현장에서 죽기도 했지만, 그러나 20년만에 공공연하게 거행되던 대규모 핵실험은 사실상 멈추게 되었다. 이게 바로 ‘그린 피스’의 역사이다. 원래 녹색이라는 것은 목숨걸고 핵무기와 싸우던 전통 위에 서 있는, 좀 살벌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에코 테러리즘’이라는 단어를 붙여준 것은 일본 정부인데, 일본으로 반입되는 플로튜늄을 이들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한국의 전기 산업에서 요즘 얘기하는 녹색 성장과 원래의 녹색이 좀 다르기는 하지 않은가?

어쨌든 시대라는 것은 이렇게 변하게 되고, 새로운 가치가 떠오르고, 그것들이 비록 왜곡되거나 전도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변화를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인데.

올해는 어쨌든 전력 분야에도 기다리던 구조조정이 실제로 있을 것 같고, 경제도 여전히 어려우며, 점점 더 파국의 클라이막스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정치적 격동도 발생할 것 같고, “몸조심, 입조심, 보약보다 낫다”는 쌍팔년식 유머도 다시 돌아올 것 같다. 괜히 함부로 높은 사람 흉 봤다가 어느 칼날에 목이 날라갈지도 모르는, 별로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마저도 정치적 행위를 하게 될 그런 한 해가 펼쳐지게 될 것 같다. 그 속에서 독자 여러분들이 몸을 담고 있고, 또 밥을 먹고 사는 전기라는 매우 특수한 에너지의 영역이며 경제적 부문인, 그야말로 여러분들의 존재론적인 실체와 정치적 올바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보면 좋겠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옳은 선택이 많은 경우,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개인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이 질문은 열린 질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는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것이 증오 위에 서 있지 않기를 바라고, 배제와 차별과 같은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서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소위 ‘글로벌’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면서, 작은 집단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집단을 희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기는 아무런 영혼도 없고, 취향도 없을 것 같지만,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기가 바라는 어떤 사회적 속성을 반영해서 정치적 취향과 문화가 생겨나게 되기 마련이다. 새해, 전기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질문들을 한 번씩 해보면 좋겠고, 설령 그것이 지독하게도 보수적이고 패권적일지라도 자신이 그러한 정치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되짚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또 어떤 가치들이 등장하면서 그것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인가? 이 변화 속에서 독자 여러분들이 자신이 살아온 정치적 올바름의 궤적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스스로에게 좋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지 않는 것, 이건 좀 살아있는 사람에게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그리고 그에 덧붙여, 늘 올바르지는 않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좀 덜 미안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