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년의 긴 산고 끝에 ‘주민투표’라는 자발적 형식을 빌려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하 방폐장)’의 유치에 성공하고, 현재 방폐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원자력발전의 부산물이 방폐물 중 위험도가 낮은 중·저준위 방폐물을 관리하는 시설을 만드는 데만 걸린 사회적 합의의 시간이 무려 19년이다.

이제 고준위방폐물, 즉 ‘사용후연료’ 처분 문제가 무거운 고민으로 새롭게 눈앞에 다가와 있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진통이 얼마나 심할지, 합의는 어떻게 이끌어 낼지 가늠키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에 우리에 앞서 고준위폐기물 관리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합리적이고 원만한 사회적 합의의 틀을 구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한다.

일본 아모모리현 로카쇼무라(동경북방 700km,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로카쇼 원자연료사이클시설은 일본원연(주)가 소유, 운영하고 있다. 로카쇼 원자연료사이클시설은 PP센터,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매설센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관리센터, 우라늄 농축공장, 재처리 시설, MOX연료공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로카쇼 원자연료사이클시설의 입지는 1971년 일본 정부와 아오모리현이 대규모 석유 콤비나트를 유치하기 위해 약 170만평의 부지를 마련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로 석유콤비나트 유치 계획이 취소되고, 석유비축시설만 입지함에 따라 일본 정부와 아오모리현이 전기사업연합회에 부지사용을 권고하면서 이뤄졌다.

전기사업연합회는 1984년 4월 아오모리현에 핵연료주기 3개 시설(재처리시설, 농축시설, 저준위방폐물 저장시설)의 로카쇼무라 입지를 제의하고, 7월 정식으로 입지를 신청했다. 이에 아오모리현과 로카쇼무라는 현과 촌내에 안전성 전문가협의회와 시설대책협의회를 설치해 핵연료 사업에 대한 합의를 얻기 위해 사업내용을 소개하고, 로카쇼무라 주민들은 연구회 결성, 국내외 관련시설 견학을 통해 방폐물관리시설에 관한 이해를 넓혀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1984년 11월 안전성 전문가회의에서 원전연료사이클 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아오모리현 지사에게 제출했고, 1985년 로카쇼무라 의회 및 아오모리현 의회는 사업유치를 결정, 국회 동의를 얻어 1985년 4월 전기사업연합회에 시설입지를 허락했다. 이후 관련절차를 걸쳐 1991년 11월 일본 과기청으로부터 1차분 20만 드럼 저준위방폐물 저장소의 건설허가를 얻어 1992년 12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다케시 아카사카 일본원연 홍보부장은 “당시 저준위방폐물 관리시설에 대한 반대가 가장 심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저장만 하는 시설임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언급도 없다”며 “신설 원자력시설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 세력이 있지만 지역주민들이 아닌 외부(동경) 사람들이 위주”라고 말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관리센터와 재처리 공장은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 이야사카타이 지구(380만㎡)에 위치하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관리센터는 해외에서 재처리돼 일본으로 반환되는 회수연료 물질 및 폐기물을 임시보관하는 곳으로, 유리고화체 1,440개의 저장용량을 갖추고 있으며 향후 2,880개 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 시설은 약 800억 엔의 건설비(고준위폐기물 유리고화체 1,440개의 건설비)가 투입됐으며, 1992년 공사에 착공해 1995년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 일본은 프랑스에서 사용후연료 재처리를 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영국에서 재처리된 사용후연료를 반입할 계획이다. 현재 이 시설에는 프랑스에서 재처리돼 반환된 1,310개의 고준위폐기물 유리고화체가 저장되어 있다.

재처리 공장은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발생하는 ‘사용후연료’의 재처리를 담당하는 곳이다. 최대처리능력은 800톤·U/년이고 사용후연료 용량은 3,000톤·U다. 재처리 공장은 100만kW급 원자로 30기에서 발생하는 사용후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시설은 약 2조1,400억 엔의 건설비가 투입, 1993년 착공해 현재 완공을 앞두고 있는 단계이다.

재처리 공장에는 1,400여명이 근무하고 있고, 시설 대부분은 지하 2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건물도 외벽 두께가 2m로 지진이나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 또 공장 내에는 IAEA 사찰관이 상주, 엄격한 핵사찰을 실시하고 있다.

로카쇼 원자연료사이클시설은 매우 엄격한 통제 속에서 관리되고 있고, 현재 운영에 있어 지역사회와의 갈등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주변 환경 역시 통제에 따른 결과인지 야생곰이  출현할 정도로 청정한 자연환경을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폐기물 임시저장 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확보,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일본 역시 고준위폐기물의 최종처분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다케시 아카사카 일본원연 홍보부장은 “아직 최종처분 후보지를 찾지 못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이라고만 밝혔다.

지경부, 내년 상반기 중 사용후핵연료 관리 공론화 본격 착수

우리나라의 경우 8월 27일 제3차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보고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9월 19일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 갈등관리전문위원회를 통해 공론화 추진계획을 논의하고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있다.

지식경제부는 공론화 사전단계의 일환으로 공론화 착수 전 필요한 기술적 준비사항에 대한 상세 프로그램을 연구용역 중이며, 내년 상반기 중 원자력발전소 내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공동 검증 및 공론화를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특히 내년 1월 1일 출범하는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을 중심으로 내년 말까지 대학, 일반시민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대국민 소통절차를 추진하고, 이후 공론화 과정을 통해 수렴된 의견 등을 감안해 추구 고준위폐기물에 대한 ‘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있어서는 중간저장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종처분 방안은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실행 사례가 없어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간저장 방안에는 발전소 내 임시저장시설의 용량을 확대하는 방안과 일본과 유럽의 경우처럼 외부의 별도 중간저장 시설을 만드는 방안이 있다.

2015년을 기점으로 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능력이 포화상태에 다다를 전망이며,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문제는 시급히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나 국민들 모두의 노력과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이미 경험했듯 조급함에서 비롯된 정부의 투명하지 못한 정책은 국민적 불신을 불러 뜻하지 않은 저항에 직면할 수 있기에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국민들 역시 불완전한 지식이나 정보에 의존한 지역이기주의만을 내세워 국가와 국민 전체가 공동으로 안고 풀어가야 할 문제를 국소적인 문제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난 시절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부안 사태라는 아픔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 상처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이에 다시는 그러한 아픔을 반복하지 않도록 부안 사태를 아픔을 예방할 수 있는 값진 처방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