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미결수, 사형확정자
“포인트 젖혀!” 이 한마디가 사형수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교도관이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마루바닥이 푹 꺼짐과 동시에 사형수의 몸이 지하로 떨어지고 올가미에 목이 걸려 대롱대롱 매달리게 됩니다. 교수형의 경우 평균 14분정도가 지나면 심장이 멎는다고 합니다. 개인에 따라 짧게는 4분35초만에 심장이 멎기도 하지만 37분까지 죽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집행을 시작하고 약 20분정도가 지나면 일단 시체를 끌어올린 뒤 의무관이 청진기로 사망을 확인한 뒤에는 다시 5분 이상 더 달아두었다가 풀어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30분정도 밧줄에 걸려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사망진단서에는 ‘刑死’이라고 씁니다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마지막 사형집행이 있었던 1997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총 902명(49~50년 국가보안법사범 및 6·25당시 사형집행은 제외)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가장 많았고 1974년에는 육영수 여사 저격범인 문세광을 포함해서 58명이 처형되었습니다. 1981년과 1984년, 1988년, 1993년, 1996년에는 단 한건의 사형집행 없이 넘어갔습니다.

이후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에 23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있은 후로는 지금까지 사형집행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과거 같으면 수용자 관리의 애로를 덜기 위해서라도 이미 몇 차례 사형이 집행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리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11명의 사형수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8명의 사형수가 있습니다. 지난해 말 특별사면으로 6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남은 숫자라고 하네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 1심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있지만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형수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들
현행법상 사형을 최고형으로 두는 조항은 형법 19개를 포함하여 모두 103개 조항입니다. 지난해 말까지 사형집행이 없으면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더불어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서 많은 논란도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1996년 사형제에 대해 7대2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현재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사형수들은 이름이나 사건을 대면 모두가 기억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의 범인들이 대부분입니다. 범행수법도 매우 ‘잔악무도’하다는 것과 살인, 강도살인, 유괴살인, 강간살인, 존속살인, 방화치사 등 인명을 살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형수의 공식호칭은 사형확정자입니다. 신분상으로는 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입니다. 그래서 사형수는 교도소가 아닌 서울구치소, 부산구치소, 대구구치소, 대전구치소, 광주구치소 등에 수용돼 있습니다. 이 구치소 이외의 다른 구치소나 교도소에는 사형장이 없습니다. 사형수들은 기결수와 달리 교정·교화 프로그램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하루 30분 운동시간이 야외활동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얼마 전 사형수들이 ‘교도소와 구치소 중 사형확정자를 처우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설에 수용한다’는 규정이 포함된 형집행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앞으로는 사형수들도 일반수형자들과 함께 교도소에서 생활하면서 교육·교화 프로그램이나 교도소 내 작업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집행 교도관도 큰 고통
사형집행은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군인 사형수의 집행명령자는 국방부장관입니다. 법무부장관도 인간인지라 사형집행 기안에 서명을 미루고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무부장관의 사인이 없으면 사형수는 기한 없이 연명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형집행 결정은 구치소와 관계없이 이루어집니다. 구치소에 어느 날 갑자기 대검찰청으로부터 사형수를 지정하여 사진촬영과 건강진단을 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사형집행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합니다. 사형수들도 눈치가 있어 그때부터 전전긍긍한다고 합니다. 사형집행 명령서가 구치소로 전달(되는 것은 건강진단이 있은 뒤 석 달쯤 지난 때라고 합니다.

집행명령서는 집행 전날 전달됩니다. 이때부터 구치소장은 집행할 교도관을 선발하고 사형수가 소동이 벌어지지 않도록 계획을 짜게 됩니다. 교도관 중에서 지원자가 있으면 쉽지만 그럴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였어도 사형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느 교도관이라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사형장은 세 개의 쪽문이 있는 높고 흰 담장에 둘러싸여있습니다. 흉가 같은 형장 안은 그야말로 침묵 그 자체라고 합니다. 이 그의 시야를 메우게 된다. 내벽은 흰색계통이고, 천정에선 백열등이 빛나지만 칸막이처럼 늘어뜨려져 있는 하얀 커튼은 음울하기만 합니다. 사형집행 당일 새벽에 청소는 했지만 군데군데 먼지가 남아 있고 바닥은 시커멓게 변색되어있습니다.

사형은 주로 오전에 집행됩니다. 사형수는 돗자리 위에 편하게 앉혀집니다. 집행관인 구치소장은 신분장과 대조하면서 인정신문(人定訊問)을 하게 됩니다. 엉뚱한 사람이 처형되면 큰일입니다.

사실 언론을 통해 극악무도한 사건을 접하면 일반인들은 “저런 인간은 죽여버려야 한다”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은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집행인들은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강박심리에 쫓겨 서두르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따라서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유언을 듣게 됩니다. 사형수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반성하거나 종교에 귀의하여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악용
과거에는 사형제도가 사상범들을 처리하거나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기도 했습니다. 무죄선고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1975년 사형이 선고됐던 8명에 대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한지 18시간에 초고속으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광복 후 제헌 국회의원, 초대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 진보당 위원장 등을 지냈던 조봉암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과 정적 관계에 놓이면서 1958년 평화통일정책 등 진보당의 정강정책과 관련해 구속됐다가 1959년 7월 31일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5.16쿠데타 직후 혁명재판소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 대해 ‘사회대중당 간부로서 북한의 활동에 고무 동조했다’는 억지이유를 붙여 1961년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사형수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0년 5.17조치와 함께 기소돼 계엄군법회의를 거쳐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재외교포와 각국의 지식인, 문화인, 정치인 등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무기징역 감형에 이어 1982년 12월 석방된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원자폭탄 제조비밀을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설 로젠버그 부부가 1953년 전기의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당사자들이 무죄를 주장하고 미국시민과 세계지성들이 구명운동을 펼쳤으나 끝내 사형이 집행된 이 사건은 ‘20세기 마녀사냥’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처형 44년 만인 1997년 워싱턴포스트지는 ‘그가 간첩이라는 주장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밝혀냈습니다.

지구상에서 사형제를 법적으로 완전 폐기하거나 사실상 집행하지 않는 나라는 120여개 국가에 이릅니다. 반면 70여개 국가에는 아직 사형제가 남아 있고 미국의 경우 12개 주가 사형제를 폐지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