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한국이 1등하는 통계들이 별로 없는데, 인스턴트 커피의 수입은 한국이 단연 1위이다. 전체적으로 원두 수입 기준으로 6위 정도 하는데, 이는 원유 수입과 대체적으로 비슷한 통계이다. 그러나 인스턴트 커피에서는 한국이 단연 1위이다. 이 숫자를 해석하느라고 최근 경제학자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는데, 결론은, 한국의 노동 강도에서 해석해야 할 것 같다는 데에 의견이 모여졌다. 노동시간, 노동강도, 연간 휴일 등 노동을 규정하는 몇 가지 수치들이 있는데, 이것보다는 '인스턴트 커피 수입 1위'라는 수치가 더 감성적으로 한국의 삶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다. 우리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정신 차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런 강도 높은 노동강도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국의 여성들에게 커피 중독이 시작되는 나이는 대략 13세이다. 그녀들은, 사교육의 진원지인 학원 앞에 놓인 자판기의 200원짜리 커피로,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 처음으로 커피 중독에 빠져든다.

이 인스턴트 커피라는 것을 만든 회사가 바로 네슬레라는 스위스의 다국적기업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미국 군인들은 전장에서도 커피를 마시기를 바랬는데, 그 기술적 문제를 미국 정부의 하청을 받아 해결한 기업이 바로 네슬레였고, 그 때부터 전 세계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탄트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 네슬레는 보통 '아얀데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칠레의 대통령이 대통령궁에서 자신의 집무실에서 자국 군인들에게 사살된 사건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얀데 정권은 1970년 집권 프로그램으로 자국의 아동들에게 무상 우유공급을 약속하였는데, 이는 결론적으로 중남미의 우유 산업을 확보하고 있던 네슬레 회사에게 치명적인 공약이 되었다. 아무도 진상은 알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아연데의 비극이 미국 CIA와 네슬레가 결탁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무시무시한 넥슬레가 최근 '공정무역'으로 유명해진 '바디샵'이라는 회사를 로레알이라는 화장품 회사를 통해서 인수하였다. 로레알과 바디샵 사이의 인수합병으로 유명해진 이 사건은, 과연 국제 화장품 회사들 사이의 독과점화인가를 놓고 논란이 붙었던 사건인데, 결론적으로 곡물회사를 겸하는 네슬레가 공정무역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서 바디샵을 인수한 것으로 해석이 모아지는 것이 최근 경향이다. 네슬레의 또 다른 얼굴은, 국제 곡물 회사이고, 그 규모도 타이슨 푸드를 비롯한 한 두개를 제외하면 바로 네슬레가 나올 정도로 대규모이다.

이런 네슬레가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왜 여기에는 노조가 없느냐"라고 말하면서 또 여러 사람을 뒤집어지게 하였었다. 도대체 노조가 없다면 어떻게 노동자들과 임금교섭을 포함한 단체교섭을 하겠는가라고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 네슬레는, 당시 "노조 때문에 나라 망한다"라고 하던 많은 경제인들을 황망하게 만들었다.

네슬레는, 이렇게 천사의 모습에서 무자비한 킬러의 모습까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비자가 강한 나라에서 네슬레는 천사가 되고,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아주 잔인한 중남미형 기업이 된다는 점이다. 존경과 증오, 모두 가지고 있는 얼굴이다. 한전을 보면서,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를 생각해보게 된다. 제발 다른 나라에서는 무서운 기업이 될지라도, 자국 국민들에게는 천사와 같은 기업이 되었던 네슬레를 참고하기 바란다. 스위스에서 네슬레는 존경받는 기업이다. 한전, 한국에서 존경받는 기업인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한전 놈들"이라고 한다. 존경의 브랜드 가치,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