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와 구조개편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전력산업의 민영화와 구조개편에 대한 토론회가 열려 전력산업계와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2일 ‘2008 전력산업연구회 세미나’에서 ‘전력다소비·기후협약·시장경쟁’이라는 주제로 열린 패널토론은 한국 전력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패널토론에서는 전력요금 현실화는 에너지시장의 왜곡을 막기 위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하고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민영화도 완벽을 추구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틀을 잡고 시행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패널토론을 통해 정용헌 아시아태평양 에너지연구센터 박사는 “한국사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며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민영화는 정부가 큰 틀을 마련해 어떤 부분부터 해결해 나가야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창섭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구조개편의 본질은 소비자와 에너지공급자의 관계 정립의 문제”라며 “소비자, 기술, 전력산업 구조의 변화를 적절히 반영해 소비자 시각에서 구조개편과 민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덕 아주대학교 교수는 “전력요금 현실화와 민영화를 함께 진행하면 소비자들이 전력요금 상승의 원인을 민영화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며 “전력요금 현실화를 이루고 나서 전력산업 민영화와 구조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태규 한국전기연구원 전문위원은 “전력관련 문제는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 수준에서 논의되야 한다”며 “전력다소비구조가 소비자의 과소비 때문인지, 전력의 효율성이 떨어져서 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전력 구조개편과 민영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가 질문자로 나서 “전력 구조개편과 민영화는 한국만의 특수한 조건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며 “현재 한국은 시장에서 발전자산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조건이며 이런 상태에서 민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영화 문제는 실질적인 조건이 갖춰지고 신규판매사업자가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나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토론회 주요내용이다.

▲ 정용헌 아시아태평양 에너지연구센터 박사

국내 전력가격은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해도 아주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발전단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현재 전력사용을 줄일 인센티브도 없다.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사회적 기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혼돈이 일어나고 의견의 양분되거나 삼분되기 십상이다. 에너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필수적인 것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후협약 대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구조개편도, 민영화도 아무런 진전이 없이 소모적인 논쟁만이 계속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전기요금 현실화도 이뤄지지 않고 원자력발전이나 기술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만 논의된다. 차라리 전체적으로 틀을 마련해 놓고 구조개편과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싼 에너지가격의 시대는 갔다. 구조개편과 민영화에 대한 논의로 홍역을 치르지 않으려면 전체적인 틀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구조개편과 민영화의 가닥을 잡아나갈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김창섭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구조개편의 본질은 정부 대 공기업이 아니라 에너지공급자와 소비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다. 그 때문에 구조개편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5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소비자도 변했고 기술기반도 변했으며 전력산업에도 구조적 변화가 존재했다. 특정기업의 문제를 지적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수준의 소비자 운동도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전력IT사업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자와 공급자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돼 실시간 가격결정이 가능해졌다. 그에 따라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상호관계도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통해 예상됐던 변화들이 이미 발생했고 여건은 5년 전과 다르게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기술혁신이 구조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이제는 소비자의 시각에서 구조개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단순히 소비자가 다양한 전력공급업체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서비스를 받을 것인지 포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부문의 구조개편은 거품을 들어내는 것이다. 기술, 소비자, 산업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구조개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구조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 김수덕 아주대학교 교수

당진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효율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42.2%정도에 그치고 나머지 석탄화력발전소는 30%대에 머물러 있다. 화석연료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은 고급에너지다. 1차 에너지원을 2배 이상 사용해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요금이 낮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비싼 에너지를 다시 열로 변환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화석연료는 경이적인 가격상승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력요금은 겨우 2.3% 올랐을 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낮은 가격의 전력을 다른 에너지보다 더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전력요금의 실질가격을 이렇게 낮은 상태로 방치하다보니 전체 에너지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을 세우고 신재생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인공적인 시장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전력요금 통제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전력에너지는 낭비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구조개편과 민영화는 우선 전력요금이 현실화된 다음에 진행돼야 할 것이다. 만일 구조개편과 민영화를 전력요금 현실화와 동시에 추진한다면 소비자는 전력요금 상승이 구조개편과 민영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오태규 한국전기연구원 전문위원

전력관련 문제는 상식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기술적, 전문적 문제로 이야기하면 소비자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낮은 가격의 전력은 당연히 소비자에게 매력적이다. 전력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전력의 효율적 이용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배출가스를 낮추고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전력다소비 구조라고 말하는데 소비자들이 과다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력의 이용효율이 낮은 것이지, 생산성이 낮은 것인지 다양한 시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
구조개편과 민영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국만의 특수한 조건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핵심은 시장경쟁을 도입하는 것이고 민영화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민영화와 구조개편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남동발전의 민영화 좌초 이후의 평가가 잘못 이뤄졌다. 한국 시장은 발전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조건에 놓여있다. 실질적 자산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수가 없다. 현재로서도 남동발전을 민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지금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잘못하면 낮은 가격에 팔수밖에 없어 국부의 유출이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민영화 문제는 발전자산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이 갖춰진 후에 가능하다. 여러 가지 민영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판매부문에서 신규판매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나서 민영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조건, 차별화된 국내 조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민영화 실행계획이 논의될 자리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