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적 은혜를 잊지 말라

  ■ “나 이번에 밀려났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갑’씨는 실력은 조금 딸려도 성실함과 신용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을’에게 많은 일거리를 줬다.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갑’은 ‘을’이 약간의 실수만 해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당장이라도 뒤집어엎을 기세였다. ‘갑’의 호된 다그침에 ‘을’은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해야 했다. 남들이 봤을 때 언젠가는 ‘을’이 팽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갑’은 꾸준히 ‘을’을 밀어주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을’의 회사는 같은 계통에서 최고는 아니어도 ‘수준급’으로 인정을 받으며 거래처를 늘리고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을’ 역시 잔챙이에서 벗어나 어딜 가도 준척이상의 대우를 받았다. ‘갑’ 덕분에 ‘을’의 회사는 클 수 있었다.

  어느 봄날 ‘갑’이 침통한 목소리로 ‘을’에게 전화를 했다. “나 이번에 밀려났다.” 그날 밤 ‘을’은 ‘갑’에게 위로주를 사며 함께 비분강개했다. ‘갑’은 ‘을’에게 집에 있으면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가 보이니까 다른 자리로 옮길 때까지 사무실에 자리 하나만 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을’은 흔쾌히 사무실에 따로 방을 만들어 주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갑’이 다른 회사에 재취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고집 세고 깐깐한 ‘갑’에게 당한 ‘적’들이 많아 그에 대한 평판도 좋지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 “그 사람 날개 떨어진 쭉정이야”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면접까지 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을’은 술을 사며 ‘갑’을 위로했다. ‘갑’ 역시 ‘을’에게 있어서만큼은 할 소리 다 해가며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곁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볼썽사나워 “날개 떨어진 쭉정이한테 왜 그리 잘 해주느냐”며 “괜히 불필요한 짐을 짊어지지 말고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어 그를 멀리 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을’은 “그가 도와줘서 내가 일어설 수 있었는데 어찌 그 고마움을 잊겠느냐”며 “그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끝까지 편의를 제공해주겠다”고 응수했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봄이 다시 찾아왔다. 어느덧 ‘갑’이 백수가 된 것도 1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사무실에 모습을 안 보이던 ‘갑’이 불쑥 나타나 ‘을’에게 “나 여기를 떠날 때가 됐다”는 말을 했다. ‘을’이 “부담 갖지 말고 편안히 계시라”고 말하자 ‘갑’이 대답했다.

  “나 직장 잡았다. 그동안 고마웠던 것 잊지 않을 거다.”

  ‘갑’은 굴지의 회사에 임원급으로 들어갔다. 거나하게 송별연을 마치고 ‘갑’이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을’에게 연락이 왔다. “메일로 보냈으니까 검토해보고 할 수 있으면 해봐. 그것만 잘 하면 줄줄이 물고 들어갈 거다. 너도 나 믿지? 나도 너 믿는다.”  

  비즈니스에서는 손해 안 보는 계산도 중요하지만 올챙이 적 은혜를 잊지 않는 의리도 참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