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배관에 들어가는 보온재 구매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의 발단은 기존 보온재의 소재를 유리장 섬유를 소재로 한 신제품(하이트린)을 개발한 업체가 한수원측에 적용을 요청하면서 부터다. 업체는 신제품 가격이 기존 제품보다 비싸지만 시공성이 좋아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등 전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 측은 이같은 업체의 주장에 대해 기술 검토를 거쳐 구매규격에 추가하는 등 관련제품의 현장 적용을 추진해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제품 조달방식이 시공사의 지입자재로 조달하는 방식을 바꿔 사급으로 경쟁없이 수의계약을 하는 것은 무리수가 따른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중부발전이나 민간기업들이 기존의 제품을 하이트린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부발전의 분석에 따르면 하이트린이 기존제품보다 10% 정도 더 비싸지만 시공비가 싸 결과적으로 제품가를 포함한 전체 설치비를 17% 가량 낮춰 경제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보온재 두께가 기존 것보다 얇아 점검과 보수가 용이하다는 부가 효과도 예상된다는 것이다.

물론 발주방식이 사업을 수주한 업체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수원이 나서서 수주업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렵다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국산화한 신제품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구매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문제는 한수원이 얼마만큼 열린 마음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려고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다. 국산 업체가 한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하지 않도록 살피고 배려했는지 묻고 싶다.

원전에 들어가는 제품은 까다로운 검증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다른 설비에 비해 진입 자체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만큼 원전은 설비의 중요도가 높고 안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제품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고품질을 인정받아야 ‘명함’을 내밀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기업체들은 자사의 제품이 원자력발전소에 설치된다는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을 갖는다. 싸다고 해서 제품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첨단 혁신제품만이 원전시장에 진입한다는 이같은 전통은 지켜져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많은 개발비를 들여 각고의 노력끝에 국산화한 신제품을 도입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의 핵심은 판로개척에 있다. 시장 진입의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기업이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사업화에 성공해 매출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혁신형 중소기업의 제품 사업화가 전적으로 기업의 책임으로 넘겨 어려움을 겪는 풍토에서는 글로벌 스타기업의 출현은 요원해 보인다.

시대적 명제가 돼버린 ‘경제 살리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과 규제를 철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생색내기용 ‘실적쌓기식’ 기업 지원 정책보다 검증된 신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려는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때다. 물 펌프에서 물 한 바가지의 역할이 중요하듯 혁신 중소기업이 본 궤도에 오르도록 공적기업의 세심한 배려와 지원이 요구된다. 기업 연구소가 어두운 밤에 불빛을 환히 밝혀 국산화에 매진하고 안정적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노리는 것은 비단 기업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