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얻어 시작한 사업

서울의 종로는 옛날부터 상권이 형성되어있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종로는 그야말로 황금광산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을 접은 P씨는 장사를 배울 요량으로 선배가 하는 종로의 민속주점에서 지배인 생활을 시작했다. 서너 해를 지나고 ‘때가 됐다’고 판단한 P씨는 독립을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

그 전에 벌었던 돈은 아이들 키우고 생활비에 충당하느라 저축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장사에 필이 꽂힌’ P씨는 어떻게든 자기 가게를 하나 열고 싶었다. 일단 전세 집을 줄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돈을 끌어 모았다. 개업까지 총 3억 원을 투자했다.

도심에 80평이나 되는 주점을 운영하는 사장.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싸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런 식으로만 돌아가면 2년만 지나가면 빚도 갚고 또 다른 가게를 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장사라는 게 화창한 날이 있으면 구름이 낀 날도 오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있는 법.

당시에는 ‘지나가는 개’도 신용카드 한 장은 가지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카드가 남발되는 시기였다. P씨의 가게 주요고객인 대학생 등 젊은 층에서는 그야말로 카드빚 무서운지 모르고 ‘외상 소 잡아먹듯’ 술을 마셔댔다. 하지만 카드대금 돌려막기는 한계에 이르렀고 발급된 카드 숫자에 비례해 신용불량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매출은 감소했고 장사가 안 되는 업소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가격경쟁에 돌입했다.

■이자를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다

마진은 적어지고, 해마다 인건비와 식자재비용은 상승했다. 매년 월세도 올랐다. 과거와 매출이 같다고 해도 주인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금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출마저 감소한 것이다. P씨를 더욱 괴롭혔던 것은 ‘빚’에 대한 이자부담이었다. 매월 수백만 원을 이자로 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서빙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니 손님들의 불만이 당장 터져 나왔다. 가게를 넘기려고 내놓아도 권리금을 건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끌고 나가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설이 낡아 또 다시 빚을 얻어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했다. 빚은 더 많아지고, 이자는 증가했다. 때로는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얻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근래에 들어 P씨는 파산신청을 고민하고 있다. 더 이상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에 대한 희망조차 잃고만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빚이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다며 큰돈이건 적은 돈이건 결코 빚으로 사업을 벌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야말로 돈을 벌어서 이자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먹는장사는 반은 남는다’고 한다. 재료비만 놓고 봤을 때는 그 이상도 남을 수가 있다. 하지만 다른 경비를 포함하면 20~30%를 남기기도 힘든 것이 음식장사다. 물론 장사가 잘 될 때 이야기다. 장사가 안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경비가 있기 때문에 마진율은 더 떨어지거나 적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업종은 마진율이 더욱 박하다. 그때 이자를 갚는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희망을 담보로 잡는 빚

간혹 사업은 자기돈 가지고 하면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 것인가. 남의 돈, 즉 빚으로 한다는 말이다. 개중에는 빚은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빌린 돈에 비하면 이자는 그야말로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차입금에 비하면 이자 1~2%는 많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매출을 대비해 본다면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더군다나 사업이 번창하고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이자쯤은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출과 비교할 게 아니라 이익금과 비교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한 사업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사업을 해서 남기는 순이익은 당초 예상과 달리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플랭클린은 “금전이란 밑바닥이 없는 바다와 같아서 양심도 명예도 떠오르지 않는다. 빚을 지는 것은 자유를 팔아버리는 것이다”는 말을 했다. 영국에는 ‘빚은 자유인을 노예로 바꿔놓는다’는 속담이 있다.  

빚은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옭아매는 올가미와 같다. 빚을 지는 순간 자유는 박탈당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빚은 돈을 빌린 사람에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가중되는 근심과 걱정으로 둔갑되어 심신을 짓누른다. 빚이란 사람에게서 오늘을 사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희망과 비전을 빼앗기도 한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생을 포기하는 사람은 그 희망과 비전을 저당 잡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대부업체가 우후죽순 생겼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가져다 쓰라고 광고까지 한다. 하지만 그 돈을 빌려 쓰면 고율의 이자를 내야한다. 만약 갚지 못하면 온갖 수모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불법사채를 썼다가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패가망신한 경우가 많이 있다.

어떤 이는 사채를 ‘극약’으로 말하기도 한다. 죽을 바에야 이거라고 써보고 죽으라는 최후의 처방인 극약이라는 것이다. 사채를 쓰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다해보고 더 이상 해볼 방도가 없을 때 최후의 선택을 하는 불치병 환자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종자돈 없으면 모아서 하라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조급하게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한 순간에 떼돈을 벌어 빠른 시간 안에 부자의 반열에 오르고 싶어 한다. 그러한 조급함이 무리수를 낳고, 악수(惡手)를 두게 한다. 종자돈이 없으면 돈을 모으기보다는 시간을 절약한다는 명분으로 빚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시간에 대박을 터뜨리기를 희망한다. 좇는다고 대박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박이란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덤으로 따라오는 보너스인 것이다.

돼지갈비 집으로 부자의 반열에 오른 S씨는 매년 1억 원 정도를 봉사활동에 쓰고 있다. 그는 ‘어떻게야 돈을 벌 수 있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다. 그럴 때마다 S씨는 싱겁게 얘기한다. “처음부터 부자가 될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매순간 열심히 일하고 꾸준히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부자가 돼 있더라.” S씨가 돼지갈비 집을 시작한 것은 23세 때였다. 지금 그는 48세이다. 부자가 되는데 25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걸리는 경우도 있고, 일찍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결코 세월을 건너뛰는 축지법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 중 한 사람인 피터 린치는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투자해야 하며, 손실을 입더라도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 한다. 빚을 얻어 투자를 하면 손실이 생길 경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돈 빌려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반대로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는 쉽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뒤집어보면 빚으로 잘 된 사람이 없음을 짐작케 한다.

빚은 갚아야 한다. 그런데 사업 가운데로 녹아들어가 있는 돈을 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도에 ‘이자는 밤에도 붙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빚이 무서운 것이다. 진리는 의외로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