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을 빼돌리는 사람들
“내가 산업스파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회사의 핵심기술을 유출하다 적발된 어느 연구원의 독백이다. 그는 받고 있던 연봉의 두 배가 넘는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접근하는 기술브로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회사의 핵심기술에 손을 대고 말았다.

기술을 절취해 외부로 빼돌린 사람들의 신원을 살펴보면 전·현직 직원이 대부분(86%)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핵심기술을 직·간접적으로 취급하거나 내부적으로 핵심기술에 접근하기 쉬운 위치를 악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개인영리와 금전유혹 때문에 회사의 기술을 빼돌린 것이 약 72%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처우·인사 불만에 따른 경우가 20%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기술유출의 형태를 보면 협력·용역업체 등에 의한 기술유출 사례도 발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범행이 아닌 기업형으로 발전, 규모도 점차 조직화·대형화되고 있다.

국내기업의 기술을 노리는 대상국을 보면 중국이 39%로 가장 많지만 미국(21%), 대만(18%), 일본(10%) 등 선진국도 적지 않은 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술보호주의 부상과 시사젼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기술유출을 통제하는 기술보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발 빠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적은 내부에 있다.
지난해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현대자동차가 3,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자동차핵심기술을 빼돌린 뒤 미화 120만 달러(10억여원)를 받고 현대차 중국제휴업체인 장화이기차(江淮汽車) 공사에 넘긴 이 회사 구매총괄본부 윤 모 과장과 중국 사업본부 직원 김 모씨를 구속기소했다.

윤 과장이 ‘도면’을 확보하기 위해 같은 팀 동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도용, 사내 전자도면 출력시스템에 처음 접속한 것은 지난 2005년 3월.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전체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수천장의 도면을 빼돌려도 사내 보안시스템에 적발되지 않다가 장화이기차의 의뢰를 받은 스위스 업체에서 제보를 해준 덕에 뒤늦게 적발할 수 있었다.

이번 기술유출사건에 앞서 5월에는 전·현직 직원 9명이 기아차 쏘렌토와 출시예정인 신차의 핵심기술을 중국의 한 자동차업체에 빼돌린 혐의로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던 한 간부가 선박 69척의 설계 파일이 담긴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중국 업체로 자리를 옮기면서 조선업계 사상 최대의 기술유출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어 8월에는 포스코 기술개발실에 근무했던 연구원들이 중국철강업체로부터 약 13억원을 받고 철강재제조 핵심기술을 빼돌렸다.

기술유출이 꼭 외국기업과 연계되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기업 간 기술유출 사건으로 재계를 시끄럽게 했다.

근래에 담수·발전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S중공업은 고액연봉을 제시하면서 D중공업 고위급 임원 등 짧게는 8년, 길게는 25년까지 일한 핵심 인력들을 스카우트해 주요 보직을 맡기는 일이 벌어지면서 기술유출 의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D중공업은 “일정기간 동종업체로 전직을 금하는 경업금지 조항을 어기고 S중공업으로 전직한 것은 경업금지 계약 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며 근무 중 취득한 기술과 영업상 비밀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 된 S중공업 K모 사장 등 전직한 자사직원 13명에 대해 경업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 걱정되는 중소기업 산업보안실태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기술유출로 인한 추정 피해액은 지난 2003년 13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79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발된 것만 그렇다는 것이지 ‘성공한’ 행위에 대한 피해액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 보안 관계자는 “USB·웹하드 등 데이터 저장수단이 발달하면서 기업의 핵심기술유출을 적발해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실제 유출건수는 적발건수의 10배가 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산업계는 퇴직자관리, CD·USB 등 컴퓨터 저장장치 사용금지, 유·무선통신 및 개인컴퓨터 보안시스템강화 등 다양한 보안시스템을 마련해 기술유출 방지에 노력하고 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같은 기술절도범을 막을 확실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산업보안 전문가를 주축으로 보안시스템을 가동하는 대기업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그런 곳’에 자금을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보안상황은 거의 무방비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1,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의 산업기밀 관리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산업보안 인식수준은 걱정이 앞서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핵심기밀을 연구개발기술 및 결과(54.2%), 산업재산권(18.9%), 생산제조기술(15.7%), 영업비밀 또는 노하우(11.2%) 등으로 꼽았고 기밀유출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느끼는 위협의 정도는 응답기업의 39.7%가 심하다, 51.6%는 보통수준이라고 답한 반면 8.7%는 위험이 없다는 응답을 했다.

응답 중소기업의 17.8%가 최근 3년간 산업기밀의 외부유출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2.6%는 2회 이상의 기밀유출이 있었다고 했다. 기밀 유출행위는 주로 퇴직직원(62,9%)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퇴직자가 관련기밀을 빼돌려 스카우트 기업에 제공하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직직원(23.5%), 협력업체 직원(23.5%), 경쟁업체 직원(9.9%) 등에 의해 기밀유출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해외유출과 국내기업 간 유출을 포함한 복수응답 결과)

■ 지나치게 소극적인 보안대책
기밀유출 수법은 핵심인력 스카우트(30.5%), 복사·절취(39.4%), 이메일(20.7%), 합작사업·공동연구(13.1%), 관계자 매수(13.1%), 시찰·견학(9.9%)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산업기밀 유출에 따른 건당 피해금액은 ‘1억~5억원’이 37.1%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5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는 기업도 26.7%에 달했다.

특히 혁신형중소기업의 경우 10억원 이상 대규모 피해를 입은 기업의 비율이 14.2%로 일반중소기업의 12.5%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보안인프라가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산업기밀 관리업무 중 방문자 출입통제와 입사 시 시행하는 보안서약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시스템 보유율이 50.0% 미만이었고 보안담당부서를 설치한 기업은 6.6%에 불과했다.

정례 보안점검 및 감사(9.8%), 보안교육(14.9%)등의 경우 20% 미만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매출액의 1% 미만을 보안시스템에 투자하고 있는 것도 기술유출을 부추기는 부분이다.

조사대상 기업의 87.0%가 산업기밀 관리시스템 도입을 위해 5,000만원 미만을 투자했다고 응답했는데 응답기업의 69.1%는 보안비용이 부족하다고 했으며 적정수준이라는 응답은 27.2%, 충분하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산업기밀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해야할 보안관리 감독체계 구축(9.8%), 보안인력과 장비확보(7.9%), 외부로부터의 정보유출 방지(6.5%), 협력기관 보안관리(4.0%) 등에 대한 조치는 절대적으로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9.6%의 중소기업만이 최근 3년간 사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산업보안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중 절반정도는 연1회 이하로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막을 방법은 없는가.
보안규정을 위반한 직원에 대한 처벌로 중징계는 13.2%에 불과했고 37.4%만이 경징계 이상의 처벌을 하는 반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별도조치를 취하지 않거나(13.7) 구두 주의(36.7%), 보안교육(12.2%)에 그치는 등 형식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기밀유출에 대한 사후대응이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기술이 유출되더라도 절반이상의 중소기업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수사의뢰(6.6%), 고소·고발(15.5%), 손해배상청구(6.6%) 등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경우가 극히 미미해 기술유출을 시도하는데 법적·도덕적 부담이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연구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보상시스템은 조사대상 기업의 65.1%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기업 측의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금전적 성과보상에 대해서는 충분하다는 응답은 16.1%에 불과했으며 36.3%가 ‘부족하다’, 47.6%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반면 기술유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퇴직자 관리에 있어서는 73.8%의 기업에서 퇴직하는 우수연구원을 위한 보상시스템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답해 퇴직자에 의한 기술유출이 많은 이유에 대한 짐작을 가능케 했다.

핵심기술의 유출은 해당기업을 파산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 앞으로도 내부 직원에 의한 기술유출 가능성은 상존한다. 열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도둑 하나를 막기가 쉽지 않다. 유출자를 색출·엄단하는 방식만으로는 기술 유출을 막기가 어렵다. 아무리 다양한 보안장치가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기술유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다. 기업은 직원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줌과 아울러 애사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기술유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분명한 것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아주 간단한 보안 상식>
▶퇴직자에 대한 관리=영업비밀 보유자 등 핵심인력이 경업금지 기간 중에 경쟁업체로 전직할 경우에는 관련법규에 의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를 퇴직 서약서에 명기한다.

영업비밀 보유자에 대해서는 경업금지계약서를 작성한다.(경업금지 기간은 최근의 판례에서는 6개월 내지 1년 기간을 인정하고 있으며 경업금지 업종과 분야를 구체적으로 한정해야 향후 영업비밀 누설로 인한 법적 대응시에 유리하다)

출입증·디스켓·연구노트 등 지급물품을 환수하고 반출물품을 검색한다. ▶연구노트와 성과물 등의 각종 연구 자료를 회수하고 개인 PC의 패스워드와 ID를 즉시 삭제한다.

▶PC의 보안관리=비인가자가 PC를 무단 조작하지 못하도록 한다. 장비별·사용자별·자료별 패스워드를 설정 운용하고 백신 및 PC용 침입차단시스템 등을 설치한다.

P2P 등 업무와 무관하거나 보안에 취약한 프로그램은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패스워드는 숫자와 문자·특수문자 등으로 구성하고 분기 1회 이상 주기적으로 변경 사용한다.

한번 사용한 패스워드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패스워드를 여러 사람이 공유해 사용하지 않는다.  응용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자동 패스워드 입력기능은 사용하지 않는다.

PC를 교체·반납·폐기하거나 고장으로 외부 정비업체에 수리를 의뢰하고자 할 때에는 하드디스크에 수록된 자료가 유출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보안조치를 한다.

노트북 등을 외부로 무단반출 하는 것을 금지한다. 디스켓 CD·USB 등의 보조기억장치는 회사에서 일괄 구입한 후 관리번호를 부여해 지급하고 인가되지 아니한 것은 회사 내로 반입하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