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등친 가짜 CPA
사기의 수법은 대체로 상대방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먹음직스런 미끼를 던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투자를 하면 높은 이자 또는 고액의 배당을 준다거나 특혜분양, 사업상의 이권, 진급, 취업, 문제해결 등을 미끼로 금품을 뜯어낸다.

이를 위해 사기꾼은 자신을 다양한 신분으로 둔갑시켜 상대방을 믿게 하고 필요에 따라 역할분담을 할 엑스트라를 동원하기도 한다.

평생 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것은 사기꾼이 제시하는 달콤한 유혹과 자신의 목적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업한지 얼마 안 된 K변호사를 찾아온 A씨는 ‘상속재산 문제로 가족 간에 분쟁이 생겼다’며 상담을 했다. 외교관인 부친 덕에 어려서부터 영어에 능통하다는 A씨는 K변호사에게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소개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취득, UN 근무 중 재정경제원에 특채, 그 후 IMF가 터져 강경식 부총리가 퇴임할 때 함께 사표를 냈다는 것이 A씨의 주요 이력. A씨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살아온 누가 봐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A씨가 말하는 상속재산 규모는 수십억 원에 이르렀고 K변호사의 판단에 승소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A씨는 “사건을 빨리만 끝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후한 수임료를 제시하며 즉석에서 약정서에 서명까지 마쳤다. A씨는 K변호사에게 “밖에서 볼 일이 있는데 깜빡하고 지갑을 빠뜨리고 왔다”며 “내일 착수금을 송금할 때 함께 보내줄 테니 기름값과 식사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K변호사는 흔쾌히 수십만 원을 빌려줬다.

시간이 흐른 뒤 K변호사는 공인회계사협회에 A씨의 등록여부를 문의했다가 “그런 사람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약정서에 명기된 휴대전화 역시 ‘없는 번호’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 A씨로부터 사기를 당하게 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변호사가 어처구니없이 사기당한 이 사연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웹진에 게재됐던 내용이다.

■난무하는 사기범죄들
한 40대 여인은 “대통령의 아들도 내 고객”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은 무속인 K씨가 “로또에 당첨돼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자 20차례에 걸쳐 수억 원을 주며 번호를 점지 받았다.

하지만 복권은 계속해서 ‘꽝’. 여인이 항의하자 K씨는 “한방에 복구시켜준다”며 번호를 찍어준 뒤 또 다시 1억3,000만원을 뜯어냈다가 사기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길흉화복을 다스리는 도통한 수도승을 자처하면서 책을 낸 뒤 수백 명의 독자로부터 중병치료나 증권투자를 하면 대박이 나도록 도와준다며 거액을 뜯어낸 사기꾼도 있었다.

‘큰 건’을 노리는 사기꾼이 있는가 하면 불특정다수에게 적은 금액을 노리는 사기도 난무하고 있다. 이벤트에 당첨돼 공짜로 물건을 제공한다고 속인 뒤 세금은 본인부담금이라며 돈을 뜯어가는 사기수법은 아직도 판치고 있다. 설문조사를 빙자해 사람을 유인, 관심을 끈 뒤 물건을 주고 나중에 대금을 청구하는 수법도 사기성이 농후한 상거래로 꼽힌다.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온라인 거래를 빙자한 사기도 늘고 있다. 싼값에 물건을 파는 것처럼 속여 돈을 입금하면 연락을 끊거나 있지도 않은 여행상품이나 펜션 등의 예약금을 송금 받아 잠적하는 식의 인터넷상거래 사기는 지금도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세무서나 은행, 검찰 등을 사칭하거나 자녀를 납치했다며 돈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은 그 수법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더욱이 전화 발신지가 중국 등 외국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범인 검거는 물론 그 뿌리를 잘라내기도 쉽지 않다.

절박한 심정으로 장기라도 팔아 돈을 마련하려는 사람에게 장기매매를 알선해 주겠다고 속여 검사비 명목으로 돈을 입금 받아 잠적하는 사기꾼도 있다.

■사이비종교인들의 사기행각
사기가 달콤한 유혹에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위협적인 언사로 공포감을 조성한 뒤 금품을 갈취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사이비종교인들의 금품갈취 행각이다.

사기죄로 7년형을 선고받은 승려 M씨는 미등록사찰을 차린 뒤 OO종파의 창시자라고 자처하면서 걱정거리가 있어 찾아온 신도들에게 귀신을 쫓는다는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가로챘다.

대자연의 기와 우주에너지를 통합해 인간의 정신세계를 정립·정화하게 됐다는 L씨는 교주 행세를 하며 신도들로 하여금 ‘병자를 치유하고 운명을 바꾸거나 나아가 영혼은 물론 육신까지 영원히 죽지 않게 해줄 능력을 가진 절대자’라고 믿게 한 뒤 이에 현혹된 신도들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종말론을 유포하며 교세를 확장했던 사이비종교단체는 ‘종말에 살아남으려면 성전을 건립해야 한다’며 신도들을 현혹시킨 뒤 신도들끼리 맞보증을 서게 해 대출을 받는 등 총 1,500억 원 규모의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무속인 P씨는 점을 보기위해 찾아온 손님에게 “결혼하면 남편이 죽거나 자식이 태어나도 병신이 태어나며 집안이 망한다”는 식으로 불길하게 점을 봐준 뒤 액땜을 빙자해 거액을 뜯어냈다.

또 다른 무속인은 원인불명의 병을 앓는 사람에게 “무병에 걸려 신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겁을 준 뒤 내림굿 비용으로 거액을 뜯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갖은 명목으로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뜯어내낸 혐의로 사기죄가 적용되기도 했다.

■사기꾼들의 다재다능한 달란트
사기를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하면 사기꾼은 기획, 각본, 연출, 연기까지 도맡아 하는 다재다능한 달란트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사기행각을 보면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을 실천에 옮기는 그들의 시나리오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사기를 당하기 쉬운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기꾼들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다가간다. 피해자들이 황당한 사기극에 넘어가는 이유는 변화무쌍한 상황에 따라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임기응변능력과 능수능란한 거짓말 때문이다.

얻고자 하는 것이 크거나 많을수록 사기피해는 크게 된다. 사기꾼이 가장 쉽게 여기는 상대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욕심이 앞선 사람들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사업을 확장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어렵게 되자 어떠한 힘을 동원, 얻고자 하는 것을 이루려는 편법을 동원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그러한 심리를 노려 상대방에게 접근한다.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신분을 만들고 적절한 상황 연출로 머잖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속인 뒤 금품을 뜯어내는 것이다. 상대방이 의심하는 기색이 보이면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상대방의 얼을 빼놓은 뒤 강압적인 태도로 화를 내며 기선을 제압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그래도 의심이 계속되면 꼬리를 잡히기 전에 도리어 큰소리를 치고 떠난다.

설령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보상받기란 쉽지 않다. 또한 경우에 따라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기꾼은 빠져나갈 법의 허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기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정상적으로는 얻기 힘든 횡재나 요행수를 미끼로 다가오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사기꾼의 말을 마냥 믿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즉시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