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정치적 신념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권주자들의 치열한 싸움과 더불어 국민들도 저마다의 의견을 쏟아낸다. 누구는 어떻고 아무개는 나라를 망칠 인간이고 무슨 당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죄다 뻔하고…. 내라는 세금 다 내고 당당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누구라도 한마디 할 권리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평소에는 마음이 넓은 것 같은 사람도 정치적인 의견만큼은 절대로 양보를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 대해서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며 다른 후보에 대해 철저하게 폄훼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단순한 의견제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길 강요를 하는 수준이다.

이때 다른 후보를 지지하거나 그 사람이 지지하는 후보를 깎아내리는 의견이 나오면 분위기는 거의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살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선거판에 나서지도 않고 하물며 정당원도 아니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선거에 목숨 건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모습이다.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에서 누가 어느 후보를 지지하건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내 의견이 중하다면 상대방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든 상대방을 설복시키려 들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역시 설복당하기 보다는 설복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때문에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합의점을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대화가 길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 심지어는 ‘적’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전투준비가 되었으니 붙읍시다
정치 이야기 못지않게 합의가 어려운 대화 주제를 꼽으라면 종교를 들 수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종교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구든 자기가 믿는 종교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신앙인이건 비신자이건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비난하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쁜 법인데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는 신앙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를 곱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교를 믿지 않는 것도 어떠한 신념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정받아야 한다.

A씨는 아내의 종교에 대해 뭐라 논하지 않는다. 자칫 부부 간에 종교로 인해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길까봐 서로 말을 안 꺼내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속해있는 종교단체의 사람들이 A에게 “이왕이면 함께 나오실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은근히 권유를 했다. 그 말을 들은 A가 대답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이제 그만 믿을 때도 되지 않았나요?”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난 전투준비가 됐으니 한마디만 더 하면 맞장 붙자’는 분위기였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견해 차이는 다른 의견으로 인한 갈등에 비해 관용도가 낮다고 한다. 정치나 종교에 대한 견해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방의 의견이나 신념을 존중하고 경청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대화의 주제로 꺼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남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 때문에 갈등이 유발되고 좋았던 사이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