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당한다는 보장은 없다.

삼국유사에는 우리 역사 최초의 사기사건이라 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신라의 석탈해는 바다를 건너와 서라벌에 도착, 호공의 집터가 길지임을 알고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한 꾀를 쓴다. 집 옆에 몰래 숯과 숫돌을 묻어놓는 뒤 호공에게 “대장장이였던 내 조상이 대대로 살던 곳”이라며 땅을 파헤쳐 증거를 제시하고 그 집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전해들은 남해왕은 석탈해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 맏사위로 삼게 되고 신라의 제4대 왕에 오르게 된다.

형법 제347조에는 사기죄를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증가한 것이 사기 범죄다. 사는 형편이 어려웠던 1960년대에는 절도 범죄가 많았지만 지금은 사기범죄가 절도범죄보다 많다고 한다. 사기범은 흉악범이 아니다. 교묘한 수법으로 피해자를 속이는 지능범이다. 경제적 거래는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 신뢰를 부수는 것이 사기이다. 따라서 사기는 신용 사회에 적이다.

사기범의 수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불특정다수로부터 푼돈을 거둬들이는 사기꾼부터 수십 수백억을 사취하는 사기꾼까지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황당하기까지 해 ‘어떻게 저런 사기를 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해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당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 사기꾼들의 재주이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의 공통점은 지적수준이 높아 법이나 제도의 맹점을 꿰뚫고 사람의 심리를 파악, 공략하는데 능수능란하고 교묘하게 이용한다. 상황을 봐가면서 적절하게 변신하고 상황을 연출한다. 단독범행을 할 때도 있지만 여러 명이 합심해 범행대상을 공략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자신은 사기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사기범죄는 한 해 24만 건이 넘는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언제 사기범죄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사기를 안 당하려면 사기꾼들의 수법을 알아야 한다. 사기범죄의 사례와 수법을 파악, 난무하는 사기를 안 당하는 방법이다.

■연일 상종가, 나 믿고 투자하라니까.

“며칠 동안 계속 상종가를 치고 있다니까요. 대박이에요, 대박” C가 가깝게 지내던 학교후배 P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주식거래 내역을 보여줬다. C는 주식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그가 주식으로 돈을 무척 많이 벌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P는 주식으로 돈을 따는 과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지난 1년 동안 2억원을 투자해 10억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형님도 주식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P는 “내가 찍어주는 종목을 사면 돈을 벌 수 있다”며 C를 부추겼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OO을 사라고 가르쳐 주었다. 지금 얼마인데 2주정도 지나면 얼마까지 오를 것이고 그때 팔라는 설명을 곁들이기도 했다. P가 또 다시 한마디 던졌다. “직접 못하겠으면 돈을 저한테 맡기세요. 저도 형님이 돈 많이 벌면 좋겠는데 까짓것 형님 위해 그 정도 못하겠습니까? 대신 돈 따면 술 한 잔 사는 겁니다”

P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평소 P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던 C는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P가 고마울 뿐이었다. 그 후로 2주간 P가 말했던 OO 주식을 유심히 관찰했다. P의 말대로 주가가 상승하더니 예측한 가격에서 하락하기 시작했다. C는 P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됐고 아내에게 주식 얘기를 슬며시 꺼냈다. P를 잘 알고 있는 그의 아내도 동감했다. 문제는 여윳돈이 없다는 것.

그 후로 P를 여러 차례 만났고 그때마다 P는 “널뛰기를 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랑을 했다. “도와준다고 하는데 왜 망설이냐”면서 또 다시 C를 부추겼다.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게 무척 고마웠지만 C는 그래도 선뜻 주식투자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뿌리치기 힘든 대박의 유혹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지금의 마음과는 달리 안 좋은 쪽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 C는 어렵게 마음을 비웠다. “난 살던 대로 살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안 해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떼돈 버는 것도 두렵다. 내 팔자는 주식으로 돈 벌 팔자는 아닌 것 같다” P가 딱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C도 인간인지라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없을 리 없었다. 간간히 다른 동창들이 P를 통해 투자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할 걸 그랬나”하고 후회 아닌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P가 전화를 했다. “미국에 있는 애 엄마에게 송금을 해야 하는데 이체 한도가 넘어서 형님이 대신 송금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한가요” C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해놓고 바빠서 하루 이틀 미루게 됐다. 그때 또 다른 후배 H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P형 얘기 들었어요? 주식투자하라고 여기저기서 돈 긁어모은 걸 가지고 미국으로 튀었대요. 금액이 엄청난 모양이던데 혹시 형도 투자했어요”

순간 C의 머릿속이 띵해졌다. 말로만 듣던 사기를 당할 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송금까지 도와줬다면 그의 범행을 도운 꼴이 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C는 사기꾼은 뭔가 다른 모습을 하고 다가올 줄 알았다.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전혀 경계를 할 수 없는 믿는 후배가 자신을 사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비운 덕에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다. 만약 대출을 받아서 P에게 맡겼더라면 돈은 만져보지 못하고 대출금을 갚느라 앞으로도 한참을 고생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느닷없이 찾아온 ‘대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게 화를 막는 계기가 됐다.

■사기 치는 자와 사기당하는 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사기 수법과 대처 방법’을 보면 사기꾼들은 ‘받은 게 있으면 뭔가 보답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한다고 한다. 공짜 선심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또 이전에 한 말을 잘 뒤집지 못하는 생각을 일반인들의 체면을 파고들기도 한다. 사기꾼들은 처음에 사소한 것에 동의하게 한 뒤 점차적으로 더 큰 제안을 수락하게 한다. 사람들은 얼떨결에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것에 동의해 버린다.

사기꾼들은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전문가를 들먹이고 크게 이익을 본 누군가를 거론하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꼭 하고 싶도록 만들기도 한다. 물론 사기꾼이 말하는 것을 확인하면 되겠지만 사람들은 확인보다는 그 말을 믿는 쪽을 택한다.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분명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당장 결정하려는 조바심을 버리고 ‘확인해보고 결정하겠다’고만 해도 사기꾼은 작전이 실패로 가고 있음을 눈치 채고 슬그머니 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