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분하면 병적으로 되고, 병적으로 되면 양분하게 된다.”-쿠르트 골드슈타인

대학 때 일이었습니다. 여자 후배랑 길을 가다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컴퓨터로 보는 점(占)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주를 입력, 점을 보았습니다.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도트 프린터에는 각자의 운세가 한자 한자 찍혀 나왔습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지만 딱 하나 기억나는 문구가 있습니다.

아마 애정운 이었나 봅니다. 용지에는 '고귀한 사랑을 꿈꾸다가도 난잡한 섹스를 즐기는 타입'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순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저는 너무 당황했고 얼굴은 이미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후배는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젊은 날 저는 제 안에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성질들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에 괴로웠습니다.

선과 악, 이기성과 이타성, 불과 얼음, 초연함과 집착, 불신과 희망, 아가페와 에로스, 당당함과 비굴함.... 대립되는 속성들로 인해 저는 사방으로 뜯겨 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혼란과 분열은 더해만 갔습니다. 저는 존재가 찢겨지기 전에 우세한 하나를 나의 적자라고 인정하고 다른 하나는 양자라고 여기며 내쫒았습니다. 내쫒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양자들을 짓밟는데 내 젊음을 쏟았던 것입니다. 그 시절에 너무나 많은 내 안의 속성들이 떨어져나갔고 저는 아직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란 존재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절반은 동물 절반은 신적 속성을 지닌 반수반신(半獸半神)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대립되는 속성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존재 자체부터 모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 속성 모두 우리의 특성임을 받아들이며 어느 한쪽을 외면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통합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한 측면만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질식시키거나 반대로 너무 궁핍하게 만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법과의 끊임없는 불화! 오늘도 무더위속에서 자기 안에 뜨거운 살육전을 펼치고 있는 누군가에게 드리고 싶은 나의 조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