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에 의해 기술을 도난당하면 그 기업은 가공할만한 손실을 입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보안시스템을 살펴보면 대기업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내부 전산망 감시시스템 도입 등 전산분야 보안관리는 양호한 편이나 인력관리 분야가 아직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CEO의 보안의지 미흡, 예산부족 등으로 전반적인 보안관리가 부실하여 기술유출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보안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보안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안의 주체는 사람이므로 경영자와 보안관리자는 물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보안 프로세스에 동참하도록 지속적인 보안의식 고취가 가장 필요하다 하겠다. <전력경제신문>에서는 산업스파이에 대한 경각심과 기업의 보안인식 제고를 위해 산업스파이 사건을 재구성하고, 세계 각국의 산업기밀보호정책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 공항에서 체포된 대만기업인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위치한 A社는 우표·라벨용품 등을 포함한 접착제품 생산업체로 전세계에 1만6천여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접착제품 제조회사이다. A社는 R&D를 위해 5천만~6천만 달러를 투자, 신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만의 F社 사장 핀OO(70)과 그의 딸이자 법인담당 임원인 훼이OO(39)은 A社의 영업비밀을 빼내기 위해 대상자를 물색하던 중 대만에 가족이 있는 A社 연구원인 텐OO를 포섭하기에 이르렀다. 거액의 돈을 앞세운 그들의 공세에 텐OO는 쉽게 넘어갔다. 대만의 F社는 900명의 종업원이 근무하며 주로 압력계를 생산하여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 1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이다.

텐OO는 1989년부터 8년 동안 F社에 컨설팅을 해 준다는 구실로 15만 달러를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A社의 ‘고도의 민감하고 중요한 제품생산 정보와 연구 데이터’를 넘겨줬다. 또한 그는 돈을 받고 A社의 정보를 F社에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만에 체류 중인 가족들로 하여금 돈을 수령하도록 하는 등 치밀한 계획 하에 움직였다. 때로는 우편을 이용해 빼돌린 서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영업기밀의 유출은 곧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경영진과 보안담당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상찮은 움직임이 보안담당자들에게 포착되었다.

A社의 신고를 접수한 FBI는 극비리에 수사에 착수했다. A社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수상한 직원을 하나하나 내사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텐OO가 수사대상에 떠올랐다.

FBI가 설치한 CCTV에 녹화된 영상자료에는 텐OO가 기밀사항인 입찰관련 서류가 보관된 서류함에 접근하는 과정이 3차례에 걸쳐 포착되었다. 그중 한 번은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끼고 서류를 훔쳐보는 장면도 있었다. FBI는 증거가 확보된 이상 지체할 필요도 없이 그를 체포했다. 겁을 잔뜩 먹은 텐OO는 순순히 범행을 시인하고 FBI의 공작에 협조하였다.

1997년 9월 4일 FBI는 텐OO를 시켜 F社의 사장인 핀OO에게 영업기밀이 담긴 서류봉투를 건네주도록 했다. 이는 핀OO과 훼이OO이 고의적으로 A社의 영업기밀을 절취하려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함정수사였다. 텐OO는 호텔에서 두 사람을 만나 서류봉투를 전달했다. 핀OO은 서류에 인쇄된 A社의 로고와 기밀표시를 주머니칼로 도려냈다.

몇 시간 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US오픈테니스대회 관람을 위해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호텔을 나서 클리블랜드 홉킨스 국제공항을 향했다. 그들을 미행하던 수사관들이 따라붙었다. 그 사이 다른 수사관들은 호텔방에 설치했던 CCTV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텐OO를 만나는 것부터 서류의 로고를 도려내는 모습까지 확실하게 찍혀있었다.

증거는 완벽했다. 공항에서 FBI 수사관들이 두 사람을 체포했다. 핀OO과 훼이OO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증거가 확실한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이 통할 리가 없었다.

재판은 연방 클리블랜드 지방법원에서 진행되었고 최종공판은 1999년 4월 23일에 개최되었는데 핀OO과 훼이OO은 공판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였다. 핀OO의 변호사는 이들이 결코 텐OO에게 회사 기밀자료를 가져오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텐OO가 자신의 의지로 자료를 의뢰인에게 가지고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이들의 경제스파이법 위반혐의를 확정하는데 3일 동안 18시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뒤 4월 26일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F社에 500만 달러의 벌금형을, 핀OO에게 6개월의 가택구금 및 25만 달러의 벌금형, 핀OO의 딸 훼이OO에게는 1년의 집행유예, 5천 달러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A社는 유죄판결이 나자 성명서를 통해 “F社가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은 일고의 의심도 없으며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발표하였다.

연방검사는 구금형이 선고되지 않았다며 판결을 강력히 비난했다. 2000년 2월 4일 연방 클리블랜드 지방법원 민사재판 배심원단은 F社는 A社에 대해 영업기밀 횡령으로 1천만 달러, 조직범죄규제법 위반으로 1천만 달러, 횡령죄로 1천만 달러, 손해배상으로 3천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