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후 최근까지 수면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EMS’ 논란이 최근 한 책자의 등장으로 논쟁이 종결될지 관심을 끈다.

‘블랙아웃과 전력시스템 운용(전력공급의 안전도 유지와 EMS의 효과적 활용)’이라는 책자가 그것이다.
국내 최초로 ‘블랙아웃’을 다룬 이 책자의 저자는 우리나라의 EMS가 비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줄기차게 지적해온 김영창 아주대교수(공학박사)와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경제학박사)이다.

저자들은 책 서문에서 “책 발간으로 인해 학계와 관계로부터 조선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과 같은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가야 할 길은 가야하며, 올라야 할 산은 올라야 한다”고 의지를 표시한 후 “지금까지의 고정관념과 정(情)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지식이 들어갈 여지가 생기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속내와 확신을 내비쳤다.

저자들은 먼저, 온 나라를 발칵 뒤집힌 ‘9.15 정전’이 전력시스템을 운용하는 급전원들이 EMS라는 소프트웨어를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전력시스템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서 발생한 사고라고 적고 있다. 지역마다 단전을 돌아가며 실시한 것도 방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블랙아웃이란 명확한 정의가 없을뿐더러 예비력이 부족해 전력시스템 붕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전력거래소가 사용하고 있는 ‘차세대 EMS'는 국산화했다고 하지만 잘못 만들어진 제품이므로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세대 EMS에는 전력시스템의 붕괴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현대적 의미의 EMS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EMS(차세대 EMS)는 상정사고 분석(contingency analysis)의 실행결과를 이용해 실시간(real time)에서 발전기 출력조정에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전력시장 운영규칙에서 상정사고 분석 결과를 SCOPF에 활용하는 것을 제외시킴으로써 SCOPF의 기능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비정상적인 사용의 근거로 들었다.

SCOPF라는 기능을 사용해야만 제약발전(constrained-on)과 제약비발전(constrained-off)에 대한 정상적인 정산이 가능해지고, 모선(변전소)별 한계비용을 계산해 지역(모선)별로 요금을 차등 부과할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전력거래소는 자신들이 SCOPF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합법화시키고자 전력시장운영규칙을 개정했다”며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SCOPF에 대한 표준적 정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거래소는 이러한 공통 기준을 사용하지 않고 한국의 전력시장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SCOPF 기준을 정의해 놓고,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정사고 제약조건을 추가하지 않는 SCOPF는 SCOPF가 아닌 OPF일 뿐인데, 전력시장 운영규칙에서 SCOPF(SCED라고 표현)라고 정의해 버렸다는 것이다. 약 1,000억 원 들여 개발한 제품에 정상적으로 들어 있어야 할 기능인 SCOPF를 실행시키지 못하니까 학술적인 용어를 행정적인 규칙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기술적 무능을 행정적으로 합법화시킨 사례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EMS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SCOPF 기능을 장착돼 있지 않았기에 시스템 붕괴의 예방, 제약발전 및 제약비발전에 대한 정산, 송전선 혼잡비용 계산, 그리고 모선(변전소)별 한계비용의 계산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실시간으로 상정사고 분석을 해서 5분마다 EMS의 계산에 의한 발전기 출력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시스템 붕괴를 예방하기 위한 발전기 출력기준점 제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저자들은 “현재 차세대 EMS는 SCOPF 대신에 단순한 경제급전 계산 프로그램에 의해 풀이된 출력기준점을 1분마다 일부 발전기에게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송전선 용량 제약 문제를 가장 크게 고민한다고 하는 전력거래소가 정작 송전선 용량 제약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각 발전기별 출력기준점을 계산해 송출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급전(dispatch) 관행”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경제급전 결괏값을 이용해 1분마다 발전기 출력기준점을 지시한다는 것은 모선(변전소)별 소비자 수요의 변화에 따른 송전선 용량 제약을 위반하지 않는 발전기 출력기준점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며, 일부 발전기에게만 출력기준점을 지정하는 것은 전체 전력시스템에서의 연료비를 최소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급전은 전력시스템 운용의 안전도 유지도 경제성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전력시스템 붕괴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저자들은 2003년 미국 동북부 블랙아웃을 경험한 미국의 북미전력신뢰도위원회(NERC)는 실시간 상정사고 분석을 반드시 수행하라고 표준서에 명시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는 현재 이와 같은 기술적 추세에 대해 역주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음을 언급했다.
2014년 10월 전정희 국회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동일 시점에 발전기가 전력거래소의 차세대 EMS로부터 받은 신호의 값과 전력거래소가 보냈다고 하는 신호의 값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는 차세대 EMS가 시스템 붕괴를 예방하기 위한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발전기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이는 자칫 시스템 붕괴를 초래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력거래소는 외국 전력회사도 상정사고 분석 프로그램을 실시간에 실행해 그 결괏값이 반영된 SCOPF를 수행하지 않으니 우리도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면서 “우리나라의 전력시장 규모 및 송전망 용량을 고려할 때 실시간 상정사고 분석과 이때 생성된 상정사고 제약조건을 반영한 SCOPF에 의한 발전기 출력기준점의 재배치가 가능한 EMS의 기능을 조속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스템 붕괴의 위험은 점차 커지고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전력시스템의 규모가 커지면서 EMS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므로 SCOPF 기능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역설했다.

“‘차세대 EMS’는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의 환경을 우리나라 기술자가 반영해 개발한 것이니 기능이 결여된 것이라도 꼭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재 EMS 기술과 우리의 차세대 EMS 기술을 자세히 분석·비교한 후에 이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며 “큰돈을 들인 ‘차세대 EMS’라는 제품을 냉정히 평가해 기능상에 문제가 있고 이를 보수·유지할 능력이 없다면 과감히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저자들은 현재 전력거래소가 사용하고 있는 차세대 EMS가 1990년대 수준의 기술로 판단된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들며 외국의 몇몇 EMS 제작사가 상정사고-이후의 문제까지 수식에 반영한 완벽한 SCOPF를 구현하는 것과 대별된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ERCOT와 같은 전력시스템 운용기관에서도 현재의 기술을 조합해 SCOPF를 실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3년 미국 동북부의 블랙아웃 사고 이후에 블랙아웃 예방기술의 적절한 사용이 중요시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의 기술을 이용해 국내에서 개발된 제품을 그것도 하위 프로그램 사이에 어떤 데이터가 오가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현재 약 8,000만kW이고, 그리고 앞으로 1억kW 이상의 전력시스템이 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저자들은 “EMS와 같은 고도의 기술과 인간의 합리적 판단이 결합된 전력시스템 운용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전력시스템에서 중대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임계점(criticality) 근처로 접근하게 되어 파국을 면치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시스템붕괴를 막는 방안으로 “전력거래소가 최신의 기술을 반영한 EMS를 이용해 운용예비력을 정상적으로 계측하고 연쇄고장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 즉 실시간 안전도 제약 최적조류계산(SCOPF)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한 발전기 출력 제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하루 빨리 시스템붕괴를 막기 위한 전력시스템 운용을 실시해야만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