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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구조개편,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문 영현 대한전기학회 회장(연세대 교수, 전력공학)
2013년 05월 26일 (일) 15:57:11 전력경제 epetimes@epetimes.com

   
문 영현 대한전기학회 회장(연세대 교수, 전력공학)
전력산업은 모든 산업의 기초인프라로서 튼튼하게 운영하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전력산업이 공기업 형태로 운영되며 공급의 의무를 지도록 한 것도 사회 기초인프라로서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력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다. 올 여름도 전력난에 살얼음판을 지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요인으로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설비부족이다. 발전설비도 대단히 부족하고 송전설비 역시 마찬가지다. 발전소 부지 특히 원전 부지 확보가 어렵고 송전선 경유지 확보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둘째는 원전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원전운영 신뢰성에 관한 문제점이 노출되어 기존 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특히 폐기원전의 수명연장이 차질을 빚으면서 전력공급력이 크게 악화되었다. 
  셋째는 정치적 문제로서 전력수급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며, 수급계획의 불확실성이 커져서 공급안정성을 잠식하고 있다. 또한 공기업 경영이 정치권에 휘둘려 기업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

  전력산업은 충분히 튼튼해야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튼튼하기는커녕 위태로운 상황이다. 우리는 수시로 대정전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공급예비율은 적정선 15%를 지키지 못하고 그 절반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매뉴얼 상에도 예비력이 500만kW이하로 내려가면 ‘준비단계’에 들어간다. 그 의미는 비상상황 발생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이때의 계통운전은 비유하자면 음주운전을 한 것과 같다. 음주운전 할 때마다 사고가 나진 않는다. 하지만 한번 사고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금하고 있다. 계통운전이 수시로 음주 운전범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정전의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산업마비는 물론 사회안정까지 위협한다. 우리도 2년 전 9.15순환정전으로 약간의 맛을 보았다. 그렇다면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대책을 수립해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원설비 확충은 원전위주의 정책입안이 있었으나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다. 송전망 확충은 답보상태다. 밀양송전탑 문제에 봉착한 후로는 송전선 신규건설은 계획조차 피하려고 한다. 대안으로 수요관리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충분치 못한 공급력을 보상토록 했고, 또한 수도권 부근에 복합화력발전소를 대거 확보함으로써 송전전력 증가를 억제했다. 이러한 대책은 임시 해결책에 불과할 뿐 가능하면 피해야할 하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수요관리는 발전설비 확충의 기회를 잃게 만들고 또한 값비싼 복합화력이 많아지면 전력요금 상승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튼튼한 전력산업은 산업기반을 다지는 일로서 국가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전력산업에 시장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전력수급의 책임소재가 모호하게 되었다. 발전회사는 6개사로 분할되어 있고 한전은 계통망을 전담하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단기적인 수급을 책임지고 있을 뿐 장기수급을 책임질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결국 전력수급은 정부 책임으로 돌아간다.  전력수급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담기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장론자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한다.
  전력수급도 시장논리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 시장론자들의 주장이다. 민간발전사들에게 발전사업을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공격대상은 공기업의 비효율성이다. 조직만 비대해지는 방만한 경영을 질타하고 있다. 시장시스템를 도입한다면 민간자본 동원이 충분히 가능하며 시장경쟁을 통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발전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훌륭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론에는 허점도 있다. 민간 발전사들의 탐욕적 이윤 추구와 공기업의 비효율성, 어느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까? 답은 불문가지이다. 전력산업을 시장기능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켈리포니아 사태이다. 결코 시장논리에 수급안정성이 흔들려서는 안 되며 국가차원의 수급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시장시스템을 표방하고 있다. 표면적 체제는 시장시스템을 따르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시장요소가 크게 결여되어 있다. 발전사업의 민간 개방은 극히 제한적이고 실시간 요금제 도입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발전회사를 6개사로 나누어  경쟁을 유도하고 있지만 치열한 시장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발전사업자와 소비자와의 쌍방거래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시장시스템의 효율성 극대화는 생사를 거는 치열한 경쟁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현재의 시장시스템으로는 충분한 시장경쟁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장시스템 도입을 위하여 발전분야가 6개사로 분리되어 있다. 사장이나 임원진이 6배로 늘어났다. 방만한 경영을 개선하고자 방만한 시스템을 도입한 격이다. 또한 현재의 시장시스템은 전력수급의 책임소재를 분산시키고 있다. 전력산업의 지상과제인 안정적 전력수급을 책임지는 곳이 없는 것이다. 최악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파생시킨다. 전력산업 정책의 표류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룹별로 아전인수식 논리가 범람하고 있다.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음에도 일부에서는 수 년 후에는 전력이 남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서로 견해가 다르고 상반되는 정책을 주장한다. 정책입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것은 전력수급을 책임지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전력수급은 장기계획이 필요하며 일관된 정책추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대로 된 시장 시스템을 도입하건 아니면 과거의 공기업체제로 회귀하건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한 현시점에서 전력산업구조 개편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전은 국가 전략사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핵 확산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인류의 에너지를 책임질 확실하고도 값싼 미래자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매우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그럴수록 국내 원전사업은 안전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여 곡절 끝에 고리1호기를 재가동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전력난을 핑계로 서둘러 가동했기 때문이다. 월성1호기 역시 수명연장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원자력안전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에 쫓기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특정지역에 대한 원전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자력 안전은 대단히 민감한 주민들의 반응을 불러 올 수 있다. 무리한 수명연장으로 수십 년간 쌓아온 기반이 일시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머지않아 원전산업을 되살릴 것이다, 그것도 국민적 합의 하에.  우리도 국민으로 부터의 신뢰성 회복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력산업은 모든 산업의 기초인프라가 된다. 전력수급정책은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정치권이나 경제논리로부터 안정성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먼저 공기업 평가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현행 평가제도는 재무, 회계 상 실적 평가에 치우쳐 있다. 공기업 중 산업인프라를 감당하는 공기업에 대해서는 새로운 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평가항목에 기술적 경영의 비중을 높여야 하며 전문기술인이 평가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력그룹사들이다. 회계 상 흑자보다는 내실 있는 경영이 더욱 중요하다. ‘제살 깍아 먹기’식 경영으로 당기 수익을 내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기술인이 경영평가에 대거 참여토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사외이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CEO의 전횡이나 배임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사외이사제도이다. 그러나 공기업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 사외이사는 정치권에서 온다. 전력그룹사의 사외이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중 기술전문가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이 법률, 회계, 경영 전문가들이다. 정치인과 언론인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어떻게 전력산업을 지켜 줄 수 있겠는가. 법률, 회계 전문가는 고문으로 임명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들을 굳이 사외이사로 임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전력산업을 지켜 줄 사람은 전력관련 전문가들이다. 전력그룹사의 사외이사는 전력분야의 비영리 협, 단체에서 추천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기인들의 협동단결이 필요하다. 한 목소리로 제도적 개선을 위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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