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 부회장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센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을
왜 기억해야 하나
기쁨은 늘 슬픔 뒤에 왔고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하고
그리하여 우리들의
두 팔이 놓은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빛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고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가네 흐르는 이 강물처럼
사랑은 가네
인생은 얼마나 느리고
얼마나 희망은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가도
가버린 세월과
옛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엔 센강은 흐르고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는 그의 성격과 시에 있어서 두 가지의 다른 경향이 공존했다. 그는 모든 새로운 것,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시상, 그리고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게는 다른 일면, 이를테면 과거를 즐겨 회상하고 옛날의 문제를 옛날 사람과 같이 느끼고 즐기고 슬퍼하는 회고적이며 낭만적인 측면이 있다.
그는 새로운 주의와 예술에 대해 말할 때 가장 기발하고 재기에 넘치며, 반면에 그가 지난날을 돌아보고 세월의 유수(流水), 인생의 허무함, 사랑의 무상, 추억의 우수 등을 옛날의 소네트(sonnet)의 엘레지(elegy)풍으로 노래할 때 그의 진면목이 약여(躍如)하며 그의 감정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이다. 이 시는 아폴리네르의 시 가운데서 백미(白眉)로서 그는 이시로 인하여 시인으로 영원히 기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라보다리는 파리 서쪽에 있는 다리로 오퇴이유(Auteuil)에 살고 있던 그는 몽 파르나스나 라틴 구역(Quartier Latin)을 가고 오는 길에 자주 이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이 시는 1912년 작품인데 이 유쾌한 호남자 코스트로(Kostro, 본명은 Wilhelm Apollinaris de Kostrowitski)도 사랑에 있어서는 불운하여 이 시절에는 이미 두 번째의 실연의 아픔을 당한 직후이었다. 당시 유명한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과의 사랑이 결국 로랑생의 변심으로 깨져버리고 이에 충격을 받은 시인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체념과 슬픔을 센(La Seine)강물에 붙여 노래했다. 이 시는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의 비가(悲歌), 애가(哀歌)이며 만가(輓歌)이다.
이 시는 물의 흐름과 같은 유동성(流動性)이 특징이다. 강물이 흘러가고 세월이 지나가고 사랑도 가버리는 유동의 시이다. 이러한 내용은 모든 구두점을 없애버린 자유롭고 막연한 문체로 더욱 강조된다. 또한 반복되는 애수의 음향과 후렴의 반복은 거리의 악사가 손풍금으로 연주하는 샹송의 애조와 같은 애처로움을 띠고 있다.
흘러가는 세월, 잃어버린 사랑을 자연에 붙여 세상만사가 허무함을 노래한 점에서 이 시는 프랑스 16세기의 서정시나 우리나라의 시조와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아폴리네르의 이 시는 예컨대 사랑과 장미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롱사르(Pierre de Ronsard ; 1524-1585)의 서정시나 우리나라의 시조의 영탄조와는 아주 다른 현실적이며 굳센 남성적인 의지가 엿보인다.
아폴리네르는 원래 건강하고 건전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카톨릭 신자이고 전쟁에 지원 입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군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가버린 사랑과 무정한 세월에 대한 한탄이긴 하나 절규(絶叫)의 푸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다른 현실적이며 남성적인 의지가 보인다.
현대시의 시발자(始發者)로 불리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일생은 그의 경쾌하고 화려한 이상과는 달리 슬프고 너무 짧은 일생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로마 태생인데 아직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아버지와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향락과 도박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남 프랑스 지방의 칸(Cannes)과 니스(Nice) 등지를 옮겨 다니며 거기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19세 때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올라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독서를 하였고 이때에 폭넓은 교양을 쌓았다고 한다.
파리의 생활은 어려워 은행의 말단 행원의 일을 해 오다가 한때는(1901-1902) 어떤 부유한 독일 가정의 가정교사로 초빙되어 독일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이 동안에 거기에 가정부로 와있던 영국 소녀 애니(Annie Playden)라는 처녀를 만나 사라에 빠지나 얼마 안 되어 실연의 고비를 마시게 된다.
그는 2권의 시집을 남겼는데, 하나는 〈알코올〉이며, 또 하나는 죽기 전에 끝낸〈칼리그람(Calligrammes,1918)〉이다. ‘칼리그람’이란 낱말도 그가 지어낸 새로운 단어이다. 즉 시를 구성하는 활자로 구성되는 시구의 배치로 어떤 현상을 나타내어 무언 중에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와 같이 시행을 같은 모양으로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그림을 그려서 독자의 시각에 호소하는 수법이다.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는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갔다. 일찍부터 시를 썼고 전위 예술가들과 사귀었으며, 1913년 불멸의 시집≪알코올≫을 썼다. 같은 해 새로운 화가들을 소개한 ≪입체파화가들≫을 발표하고 전위예술의 뛰어난 이론가의 한사람이 됐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상징파(象徵派)의 쉬르레알리슴(Surrealisme)을 중계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나 그의 사적 경험은 ≪알코올≫과 함께 또 하나의 대표시집 ≪칼리그람≫(1918)에 합쳐졌다. 그 후 ≪새 정신과 시인들≫과 같은 시론(詩論) ≪틸레지어스의 유방(乳房)≫과 같은 쉬르레알리슴 연극 등을 썼고, 시집 외에 콩트(contes)작가로서도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