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험한 산을 오르노라면 부부애가 더욱 더 돈독해질 거라는 생각이다.

앞에서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미끄러지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뒤 울퉁불퉁한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험한 등산로라면 더 더욱 그러 하리라는 생각이다. 서로가 신경을 써주지 않고, 한순간만 방심해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주 토요일 아내와 함께 경남 밀양에 소재하고 있는 천왕산과 재약산에 다녀왔다. 천왕산과 재약산은 갈대와 억새로 유명한 산인데, 울산과 언양, 밀양에서 올라가는 다양한 등산코스가 있다. 네비가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 왔는데, 가장 험하다는 밀양 얼음골로 들어서고 말았다.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이 아마추어로서는 도전하기 힘든 곳이니. 갈대와 억새만 보려한다면 표충사에서 오르는 등산코스나 인근의 휴양림 코스를 택하시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지만, 이왕 온 김에 과감하게 도전한 것이다. 

2백여미터 평지를 지나니 온통 돌 천지다. 옛날에는 중구난방 돌들이 놓여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여러 사람들의 희생으로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크고 작은 돌들보다 이곳에서 본 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평생 봐야 할 돌들을 그곳에서 본 듯한 느낌이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다. 나야 평상 시 테니스로 단련된 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는 처음 30분 동안은 호흡하기도 힘들다며 상당히 어려워했다. 전날 비가 온 터라 낙엽 쌓인 돌을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힘이 2배나 더 드는 것은 당연지사. 보편적으로 얼음골 입구에서 천왕산 입구 능선까지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는 데 우리는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힘들 게 천왕산 능선에 도착하니, 도전에 성공했다는 쾌감으로 온 몸이 짜릿하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천왕산 주위의 억새와 재약산의 갈대를 보려는 등산객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천왕산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먼 발치로 재약산과 표충사를 보고선 하산하려는 데 아내는 어떻게 내려가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종아리도 아프고 무릎도 시끈시끈하다며 엄두를 내지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얼을골 주차장에 차가 있으니 도리가 없지 않은가.

오를 때는 위만 쳐다 보느라 실감하지 못했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완전 급경사다. 정말 한순간 잘못하면 큰 일이 나겠다 싶어 정신을 집중하고 한발 한발 내딛는다. 아내는 간혹 무릎이 아프다 하면서도 참으며 내려온다. 우리 보다 앞서 천왕산 정상에 오른 용인대 학생들이 우리 뒤를 바짝 뒤따라 내려오며, 우리보고 힘들지 않으시냐고 한다. 한창 때인 자기들도 힘드는 데, 나이 드신 분들이 얼마나 힘이 드시겠느냐는 표정으로.....

천신만고 끝에 얼음골 주차장에 도착했다.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전문 산악인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거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되, 나와 아내에게는 정말 힘든 코스였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도 피하는 험한 코스에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맛보았다. 그리고 4시간여 등산 시간 아내와 함께 나눈 이야기와 듀엣으로 부른 노래들은 나와 아내의 애정을 더욱 더 돈독하게 해준 매개체이기도 했다.

나는 40여년 여 테니스를 하고 있는 까닭에 비교적 하체가 튼튼한 편이다. 하지만, 아내는 여느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근력운동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이유로 나와 아내는 틈틈이 집 앞 굴암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굴암산에도 다소 험한 코스가 있는 데, 천왕산의 얼음골 코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만큼 담대해졌다는 증거다.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격의 차이로 금전적인 문제로 자녀들 교육문제로 친인척 문제로, 대단한 일로, 때로는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면서 살게 된다. 그런 점에서는 나와 아내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싸움을 하면서 부부간에 애정도 쌓여 간다. 부부 사이의 애정을 돈독하게 하고, 애정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법이야 수 10여가지 있겠으되, 이번 경험을 통해 험한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나의 생각이다. 가냘프게 생각했던 아내의 강단이 나보다 세고,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오히려 아내보다 약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도 험한 산이 가르쳐 준 교훈이기도 하다.

정말 강력한 부부애를 느끼고 싶다면, 부부애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험한 산에 오르고 내리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나 역시 아내와 함께 앞으로도 험한 산에 계속 도전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