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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9.15 정전사태를 돌이켜 본다
김주영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
2011년 09월 26일 (월) 09:36:53 전력경제 epetimes@epetimes.com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불러온 비극

911 테러 10주년을 앞둔 지난 9월10일, 샌디에고를 중심으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 일대가 암흑으로 빠져 들었다. 이와 같은 시각 정전사태는 애리조나와 텍사스 등 인근 지역까지 확대됐다. 안 그래도 911을 앞두고 테러 위협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은 테러를 걱정했지만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전력회사의 단순한 실수가 송전선로를 타고 확대된 것뿐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불과 나흘 뒤, 우리나라에도 매우 보기 드문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스위치만 올리면 항상 전기불이 들어오는 환경에 너무나 익숙한 우리 국민들은 크게 놀랐다. 사실 이번 대규모 정전은 일정한 전력예비율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전에서 특정 지역을 순환하면서 전력공급을 중단한 “인위적인 정전”이므로 사고나 실수에 의한 정전과는 성격이 달랐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뛰어난 전력시스템을 갖추고 일반 국민들로서는 정전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였기에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는 그 충격이 컸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이번 정전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전력수요 예측을 잘못한 한국전력거래소에 있다. 전력거래소는 과거 한전에서 전원개발계획과 전력수급계획, 그리고 송전선로인 계통운영 등의 기능을 하던 조직을 지난 2001년도에 별도로 분리해 낸 사단업인 조직으로, 우리나라 전체 전력산업의 계획을 짜고 송전선로를 운영하는 기능을 하는 조직이다. 전력거래소는 지난 몇 년 동일 기간의 전력수요 기록을 바탕으로 매일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여기에 맞춰 발전기 운전 계획도 수립하는 한 마디로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두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전력거래소가 지난 9월15일 보다 하루 전, 즉 14일에 예측한 15일의 전력수요는 약 63,000 메가와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평년 보다 훨씬 높은 이상기온을 기록한 이날의 실제 전력수요는 68,000 메가와트가 넘어서게 됐다고 한다. 더운 날씨 때문에 이렇게 수요가 공급능력을 훨씬 뛰어넘게 되자 전력거래소는 한전에 지역별 순환정전을 지시했다. 순환정전이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전체 전력망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시점에 강제적으로 지역별로 전력공급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기온 상승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력거래소의 잘못된 수요예측 때문에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가 빚어졌던 것이다.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로 많은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교통신호등이 꺼지는 등 우리가 외신에서 자주 봐왔던 상황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전력시스템을 갖추고 정전률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게 됐다. 사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매우 간단한데 있었다. 바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었다.

지난 2001년 4월, 당시 한국전력공사는 화력발전회사 5개, 수력원자력회사 1개, 한국전력거래소, 그리고 현재의 한전 등 모두 8개의 조직으로 나눠졌다. 이전까지는 하나의 전력회사가 전원계획수립, 전력설비 건설, 전력생산과 공급까지를 하나로 묶어서 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었지만, 경쟁을 통한 효율성 향상이라는 신자유주의 확산은 전력산업도 분할과 민영화를 통한 시장경쟁체제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확산됨에 따라 이와 같은 구조개편이 벌어진 것이다.

구조개편의 문제점은 바로 전력산업의 각 부문별 유기적인 조율과 협력이 필요한 전력산업의 핵심을 놓쳤다는 데에 있다. 전력산업은 망을 기본으로 하는 네트워크 산업으로서 다른 산업과는 달리 각 사업부문 사이가 물 흐르듯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유지가 되며,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기업체 또는 조직이 생산에서 공급까지를 전담해야 한다는 것이 진리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확산은 전력산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주로 앵글로 색슨 계열의 서방 국가들이 구조개편을 적극 주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2001년의 캘리포니아 사태, 2003년의 캐나다 온타리오주 전기요금 폭등 등 구조개편과 자유화는 그 어느 곳에서도 성공은커녕 참극으로 마무리 됐다.

우리나라의 구조개편은 IMF 위기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시작됐고 2001년,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1차적으로 발전과 계통운영 부문이 한전에서 분리됐고 민영화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개편의 위험성을 직시한 전력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으로 2단계 분할이었던 배전부문 분할이 2004년에 중단됨에 따라 더 이상의 구조개편은 이 땅에서 사라졌다.

이번 정전사태 원인의 핵심은 전력거래소의 수요예측 실패에 있었으며, 이는 계통망은 운영하되 전력산업의 현장을 이해 못하는 전력거래소 실무자들의 잘못된 정책판단에 있었다. 이는 계통망을 소유한 한전과 운영을 따로 하는 전력거래소의 이원화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따라서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을 불러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계통망 운영자인 전력거래소를 계통망을 소유하고 전력공급에 책임을 지는 한전으로 다시 통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계통망 소유자와 운영자가 구분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이유가 이 두 주체 사이의 단절이 재앙을 불러온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이다.

전력산업은 국가와 국민 생활을 뒷받침하는 척추와 같은 중요한 존재이다. 이번 정전사태에서 보듯이 한 순간의 전력공급 중단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다. 제대로 된 전력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잘못된 정책결정으로 찢어진 전력산업을 다시 하나로 묶는 재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야 말로 그 동안 “잃어버린 전력산업의 10년”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발전을 이루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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