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윗사람의 심리를 잘 간파한다. 윗사람의 속내를 정확히 알아내어 사전에 근심을 덜어주기 때문에 윗사람 입장에서는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자주 속임을 당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관찰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하기만 한 사림들이 많이 있는데, 악한 자들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다. 일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적을 무정하게 대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보전할 수 없어서 위해를 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혜에 반드시 좋은 보답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직 실력만이 중요하다. 남을 쉽게 믿지 않아야 理智를 잃지 않고 무턱대고 추종하지 않는다. 상대의 좋고 나쁨을 통찰하고, 나아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어야 상대를 굴복시키고 통제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읽었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모략의 즐거움’이란 책에 나오는 인간관계의 기술이다. 중국의 유명한 고대 전략가이며 역사학자이기도 한 마수취안이 쓴 책으로 원제는 ‘라식경(羅織經)’이다. 5천년 중국역사의 난세를 치세로, 15억 중국인의 처세술을 슬기로 이끌어 준다는 인생 최고의 전략 바이블로 인식되고 있다. 인생과 관련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략이 담겨져 있어서 금기서로 지정되어 지금은 중국 현지에서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희귀본이라는 전언이다. 라식경이 ‘모략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바뀐 것은 일본인이 자국어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어 번역본을 모출판사가 입수하여, 일본어 원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이며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비범한 인간관계의 술수까지 가르쳐 주고 있다. 평범한 사람, 착한 사람들을 권모술수의 천재로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주기에 ‘라식경’이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다. 물론, 읽는 사람이 옳고 그름을 취사선택해서, 자신의 인생에 반영해 나가면 되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는 맹모삼천지교에 다름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까운 사이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를 능가하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 고구려와 연이 깊은 수나라 양광(양제)과 같은 반역자(反逆者)는 역사와 세계사에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권력이 인간성을 잃게 해서 무슨 짓이든 다 저지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양제처럼 부친을 죽이고 황제의 지위를 차지한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권력을 잡으면 단번에 출세해서 제멋대로 힘을 쓸 수 있으니 어찌 넘보는 사람이 없겠는가. 권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권력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초월하게 해버린다. 그로 인해 친족과 골육사이의 감정이 권력의 찬탈에 장애가 되는 경우, 과감히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은혜 또한 항상 선한 결과,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다. 은혜 가운데 군주가 신하에게 베푸는 것보다, 상사가 부하에게 베푸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왕망과 같은 간신은 황제의 은혜를 두텁게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강산을 찬탈하고 말지 않았는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왕망 같은 부류의 인물은 오늘도 부끄럼없이 이 세상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해서, 반드시 좋은 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수 없이 목격하고 있다.

공자의 성선설, 순자의 선악설을 구분하여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렵겠으되, 사람의 욕망은 다양하고,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작금의 세상이다. 크고 작은 조직체든, 회사든 사회든 소인배들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견해는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능력도 학식도 없지만 아랫사람이든 윗사람이든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여서,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소인들은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과욕과 이기심으로 점철된 소인배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불행한 사건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척박한 세상인심을 겪다 보면 선한 행위보다는 악한 행동에 빠질 수 있다. 나쁜 인간이 득세하고 좋은 사람이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시대에는, 착하게 사느니 오히려 악하게 사는 게 낫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선현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악행의 결과로 단맛을 보게 되면 그런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린 오늘이다.

타인을 믿지 말고 경계하도록 주의를 주는 세상이다. 타인을 믿는 것은 자신을 믿는 것보다 못하니, 다른 사람을 경계할 때는 요행을 바라지 않도록 경고한다.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히면 남을 고려하지 않게 되고, 설령 남을 위해 회생한다 해도, 조건과 한계를 구분지은 세상이 바로 오늘이다.

믿어야 복이 온다 하고, 믿어야 마음이 편하다 하고, 믿어야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 무엇인가가 서로를 경계 짓게 하는 오늘의 현실이다. 과연 어떤 방식의 인간관계가 진정한 인간관계인가,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