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수소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던 지난 3월, TV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던 그 장면을 지켜본 원자력계 한 관계자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세계적으로 가동중 원전의 안전성 제고라는 숙제를 안겨줬다. 21기를 가동중인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100만분의 1이었던 수소 폭발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정부는 국내 가동중 원전의 정밀 점검을 통해 전원 공급이 필요 없는 수소 제거장치를 가동중 원전에 설치해 안전성을 높이는 등 다각도의 개선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병령 한국원자력기술 사장은 지난 4개월 동안을 마치 4년의 시간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순간을 보냈다. 한수원과 공동으로 국산화에 성공한 피동형수소재결합기(PAR:Passive Auto-Cat. Recomb)가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PAR은 원자력 발전소의 격납용기 내의 비정상적인 상황, 즉 설계 및 중대사고가 발생할 경우 발생된 수소의 농도를 낮추는데 사용하는 장비로 원자력 격납용기 안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증가하게 되는 수소를 걸러내고, 수소가 제거된 공기를 다시 원자로 내부로 공급하는 장치다.

고병령 사장이 바쁜 시간을 보낸 이유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 폭발이 발생하면서 외부 전원은 물론, 비상전원이 차단되더라도 가동될 수 있는 수소 제거장치가 바로 국내원전에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국산 PAR은 가장 먼저 월성원전 1호기에 설치됐다. 27대가 설치됐는데, 6대는 설계사고를, 나머지 21대는 중대사고를 대비해 설치됐다. 한국원자력기술은 지난달 15일 1차로 중대사고용 21대를 납품했고, 24일에는 나머지 6대를 각각 납품했다. 5월초 계약 후 그 두 달은 한국원자력기술로는 힘든 시간이자, 보람이 있었던 나날들이었다.

고병령 사장은 “KOPEC과 KINS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으로 보통은 1~2년이 걸릴 서류작업을 4개월여만에 진행하느라 무척 힘들었다”면서도 “한수원 월성원전 관계자들은 물론 KINS 관계자들이 문제를 직접 찾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등 발 벗고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그러면서 “수소는 4% 이상일 경우 발화돼 터질 가능성이 큰데, 4% 이상의 고농도 시험을 전개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안전을 고려해야 하고, 수소가 타지 않고 촉매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런 실험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는 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올해안으로 신월성원전에도 수소결합기가 설치될 것”이라면서 “제3기관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한 결과 외국산보다 우수한 성능을 확인 받았고, 이를 KINS가 인정해 인허가를 내린 제품”이라고 밝혔다.

고 사장에 따르면 PAR만 설치된 유럽과 고농도 수소가 발생될 경우, 이를 국부적으로 태우는 장비인 이그나이터를 설치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 둘 모두를 채택하고 있다. 고병령 사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이중의 안전 시스템을 장착, 세계 어느 나라 원전보다 안전성을 제고했다”면서 “국내 원전의 안전에 일조할 수 있게 돼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만에 하나, 100만분의 1의 확률에 도전한 한수원과 한국원자력기술의 선제적 대응이, 후쿠시마라는 세계적인 재앙속에서도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안전을 제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