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재일 국회 교육과학기술 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을 비롯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7명의 위원들은 23일 고리원전과 월성원전을 잇달아 방문, 수명연장을 통해 운전중인 고리의 운영 실태와, 수명연장을 앞두고 있는 월성원전의 수명연장의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선에 오염된 먹거리 문제로 일본은 물론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최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1차 식품안전정책위원회에서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을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5일 후쿠시마 원전 근처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 및 유제품, 채소, 과일 등의 수입 중단을 발표했다.

홍콩과 대만의 경우, 후쿠시마현 포함 5개 원전 인근 현에서 생산된 식품의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했고 미국의 식품의약국(FDA)도 22일 후쿠시마 원전 근처 생산된 우유 및 유제품, 채소, 과일 등 수입 중단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물론 국회,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61차 라디오ㆍ인터넷 연설’을 통해 “일본의 방사성 물질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방사능 낙진에 관한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과학적인 억측에,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전문가들 견해에 따르면, 우리 원전은 우리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최대 지진을 고려하고, 여기에 여유도를 더해 설계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고로 분류되는 경우는 한 건도 발생한 적이 없고,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일본 사태를 보면서, 더욱 철저하게 한 번 더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교과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1차 긴급 점검 결과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고, 계속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안전수칙 매뉴얼을 비롯해서, 모든 면을 한 단계 높여 나가고자 전문가들과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교과부…원자력안전위원회 긴급 소집=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는 21일 일본 지진 및 원전사고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긴급 소집하고 ‘국내 원전 안전검검 세부계획’을 심의ㆍ확정했다.

이주호 장관은 이날 ‘국내 원전 안전점검’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시각에서 국내 원전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며 “특히 20년 이상 가동중인 원전을 중점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과부는 이번 안전점검은 “지진 발생 후 대형 지진해일 발생(태풍에 의한 것도 포함)에 의한 전력차단→원자로 노심 용융 등 대형 원전사고 발생→비상대응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할 것”이라며 “종전에 몇 차례 실시된 바 있는 지진에 대한 점검 뿐 아니라, 지진과 태풍 등으로 발생하는 해일에 대한 대비책을 심층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점검에서는 또 연구용원자로, 핵연료가공시설의 침수대책, 화재 방호 체계 등과 방사선 비상진료기관의 비상진료 장비 확보, 방사선의약품 비축의 적정성도 함께 점검된다.

교과부는 특히 “점검 결과는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정밀 진단이 필요한 원전에 대해서는 가동중단(Shut down) 조치도 검토할 계획”이라며 “4월 말까지는 1차 점검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며, 중장기 검토 과제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장관은 이날 국내 원전의 안전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원자력 안전행정 관련 별도의 상설위원회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당ㆍ국회 활동도 분주=자유선진당과 진보신당은 지난주 국회에서 긴급토론회를 열고 일본 원전 사고 여파에 따른 국내 원전의 현주소에 대해 진단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 회의를 통해 향후 정책 방향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인도를 공식방문중인 박희태 국회의장은 24일 현지에서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원자력 안전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박 의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불안이 커지고 있다”면서 “현재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 법안, 원자력안전법안 등 관련 법안이 해당 상임위원회인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계류되어 있으나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24일 배은희 한나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당정협의를 통해 교과부 산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시키는 내용을 포함해, 범정부 차원에서 원자력 안전을 총괄하고 국제적인 공조를 강화할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21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정책위 차원에서 현재 원자력발전의 안전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원자력 에너지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하도록 TF를 구성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방사능 물질 노출로 피폭자가 늘어나는 등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앙이 발생해서 우리 국민의 안전성 문제도 시급하고 앞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민주당은 원전 안전점검 및 에너지정책재평가 특위(위원장 변재일 교과위위원장)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례 연설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노후화됐음에도 수명을 연장했다가 사고가 났다는 점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며 “따라서 월성1호기,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 계획을 백지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민주당, 원전 안전 문제에 대한 이성적ㆍ경제적 접근해야’라는 주제의 논평을 통해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우리가 놓치지 말고 항상 점검해 나가야 할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우리 에너지 구조를 흔들고, 산업 구조를 흔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눈에 띄는 주장들=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국회서 마련한 긴급토론회 참석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우리나라에서 원전 정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원전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에 가까운 뜻의 얘기가 나오는 데 너무 호들갑스러운 반응, 과잉반응”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핵에너지는 결국은 버려야 할 것”이지만 “핵에너지에 대체할 만한 에너지가 개발되어 실용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한, 현재로서는 핵에너지 개발이용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활용할 수밖에 없는 단계까지는 활용하되 안전성 확보에 치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21일 KBS 라디오 ‘이규원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원자력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이같이 주장하는데는 원전 안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이 현재 교육과학기술부 산하로 되어 있어 원자력 진흥 업무와 규제 업무가 하나의 부처 안에 공존할 경우, 원자력 규제 기관 담당자가 원전건설과 진흥의 업무와 연계될 가능성이 켜서 객관적이고 철저한 원전 안전검증이 어렵다는 것이다.

김재균 민주당 의원은 “현재 원전사고에 대한 배상한도가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돼있고, 안전관리 또한 교육과학기술부 1개 부처로 한정돼있어 범정부적인 종합대책 마련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하면서 “이에 따른 법률 정비가 시급한 만큼 원자력법과 원자력손해배상법 개정안을 23일 발의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단체…“원전정책 전환” 목소리 거세져=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시민사회 단체의 활동은 더욱 강화됐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 관련 소식을 담은 일일 브리핑을 지속하는 한편 해상시위, 기자회견, 인터뷰, 각종 긴급토론회에 참석하면서 ‘원전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힘을 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환경운동연합 등은 21일 성명을 내고 “이번 원전 안전 점검은 체르노빌과 쓰리마일,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교훈에 더해 한국의 원전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그야말로 ‘총체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원전과 설계 변경한 한국형 원전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증기발생기 손상, 핵연료봉 손상, 방사성물질 누출과 노동자 피폭), 그리고 중수로 발전소에서 계속 되고 있는 방사성물질 누출과 주변 오염 등에 대한 안전점검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전이 위치한 지역에서의 목소리도 커져 가고 있다. 지난 23일 부산, 울산, 경주, 통영 거제, 서울 중앙 환경연합은 고리와 월성 원자발전소력 앞 바다에서 월성 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 노후 핵발전소 폐쇄, 신규 핵발전소 건설반대 구호를 외치며 해상 시위를 벌였다.

영광에서도 시민사회단체가 ‘영광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영광 원전 3~6호기에서 원자로 손상과 정지사고, 핵연료봉 파손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안전문제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외부 전문가와 시민사회 단체 참여를 교과부가 보장하고 정부와 영광군은 현실성 있는 방사능 방재대책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규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삼척에서도 반대운동이 힘을 실어가고 있다. 삼척 핵발전소유치 백지화 투쟁위원회는 내달 4일 삼척대학로 공원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22일 49개의 시민사회단체, 정당이 참가한 ‘일본대지진, 핵사고 피해지원과 핵발전 정책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드리마일 핵사고 발생일인 3월 28일부터  체르노빌 사고 발생일인 4월 26일까지 일본대지진, 핵사고 피해지원과 핵발전 정책전환을 위한 공동행동기간으로 선언한다며 “정부의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중단 등 핵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핵발전소 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