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연구원 국내외협력팀장/국제협력전문가

어느 조직이든 보직자 보다 비보직자의 수가 많기 마련이다. ‘연구는 직급과 직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현장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평상 시 자주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내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근무한지도 올해로 벌써 27년째다. 행정전문인력으로 들어와 1년여 연구 관련 업무에서 외도를 한 것을 제외하곤 줄곧 국제협력 및 홍보와 관련된 업무만 담당해 왔다. 지금은 홍보 관련 업무 대신 국내협력 업무까지 수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대내외 협력업무를 총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직급과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연구원들을 많이 보아 왔다. 반면에 높은 학위를 가진 연구원이 보직으로 인해 연구에 몰두하지 못하는 사례 역시 많이 보아 왔다.

학위를 받기 위해, 자신의 학문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 소속원들의 인사관리와 과제 제안서 작성에 시간을 보내는 현실을 보면서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알기로는 인문사회계든 이공계든 정부출연연 보직자 대부분은 박사학위 소지자다. 박사 학위자라 하면 그 분야에서는 최상의 전문가다. 그런 그들이 연구보다 참여 연구원들의 관리와 간접비 그리고 인건비의 확보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들이 연구 외적인 일에 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제도적 환경적 요인 때문에서다.

언제인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한 사람이 해외여행 경험이 없어, 노벨상을 수상하러 가기 위해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를 통해 들은 적도 있다.

현대는 비즈니스카드 전성시대다. 바로 명함이 본인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시대다. 관공서에서든 회사에서든 업무관계로 만나거나, 사회에서 새로운 친분을 맺게 되어 명함을 주고받게 되면, 직급과 직책부터 확인한다. 직급과 직책이 인품과 능력까지 평가해주는 바로미터 그 자체다.

이러한 행태는 연구원(硏究員)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 과제 선정 평가 시에도 직급과 직위가 우선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정부가 제안하는 연구사업의 경우에는 더욱 더 심하다.

물론 처음 대하는 상대방에 대해 능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급과 직위로 우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그런 판단과 이해가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직위가 없어도 연구능력이 출중한 연구원을 많이 알고 있다. 반면에 입으로만 연구하는 보직자 연구원들도 많이 알고 있다. 물론 오랜 경영 및 관리경험을 기반으로 과제와 로드맵을 작성하고 참여 연구원들을 리드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실제 손으로 발로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연구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플러스 요소로서 작용할 수 있겠지만, 행정원들은 행정업무에, 그리고 연구원들은 연구에 집중하고 몰두할 때 빛이 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능력있는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 직급과 직위가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풍토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전문가로서 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