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한 때 팔색조라고 불렸던 투수가 있다. 내가 처음 연세대학교라는 학교에 가서 처음 맞은 연고전이 춘계대학야구였었는데, 그 때 조계현을 처음 봤다. 극적으로 이기기는 했는데, 조계현이 잘 던져서 이긴 것은 아니고 역전 쓰리런 홈런을 쳐서 이겼다. 미국 아메리카 리그에도 홈런 치는 투수들이 가끔 나오는데, 투수가 볼을 잘 못던지면 타격이라도 잘 해야... 요즘 내 삶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딱 그런 셈이다. 최근 NHK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갈 계획이 진행 중인데, 일본에서 나는 ‘반 빈곤 전문가’로 소개되고 있고, 내 책은 일본 서점의 반 빈곤 칸에 꽂혀서 판매된다. 기후변화협약 협상하던 시절에 외국인들은 나를 ‘에너지맨’이라고 불렀는데, 일본의 네도, 한국의 켐코, 이렇게 두 기관이 수 년간 협상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고, 프랑스의 노벰 등 에너지 관련기구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생태적 전환 발생

지난 3년 동안 서부발전의 사외이사로 지내면서 한전그룹 내부의 모습을 아주 소상하게 볼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 기간 동안에 나는 한 때는 ‘농업 전문가’ 또 한 때는 ‘청년 전문가’, 진짜 요상한 이름들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한다면, 나는 ‘생태 맨’이라고 불리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정작 내가 박사논문을 썼던 생태경제학과 생태학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얘기도 한 번 못해봤다. 최근 노회찬 후보의 자문을 맡았는데, 그 앞에 놓은 수식어는 ‘청년 정책’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생태학에 대한 얘기를 하는 순간이 올까? 현대건설 과장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해서 최근 노회찬의 후원회장까지, 내가 맡은 직급과 직책은 정말 다양했는데, 그 중에 ‘생태’라는 수식어를 가진 것은 ‘생태경제연구회 부회장’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생태의 시대가 한국에 올 것이고, 언젠가는 국민경제의 생태적 전환이 발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야말로 ‘믿음’의 영역이다. 그런 눈으로 전기에 대해서 한 번 고민을 해보자.

한전 지방이전 반대

가장 최근에 공식 논의에서 내가 한전과 관련된 논의에 낀 것은 한전 민영화 문제였다. 수 년전부터 한수원 문제로 시민단체에서는 예전과 달리 한전 민영화에 적극적인 흐름이 존재한다. 정부 돈으로 원자력에 들어갈 거라면, 차라리 민영화해서 시장 가격대로 움직이자는 논의가 있다. 나도 한수원이나 수자원공사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한전 민영화에는 가장 강력한 반대 입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한전의 상층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야, 차라리 민영화시키는 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발전자회사의 입장에서 사정을 보니, 시어머니가 너무 많고, 한전은 ‘못된 시어머니’ 노릇이 너무 심해보였다. 어쨌든 국민들의 시각에 “한전 잘 한다”는 얘기가 절로 나오게,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할 것 같다.

한전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는 별로 현실성은 없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이전을 반대한다. 한전그룹이 뿔뿔이 흩어져서는 경영협조 등 효율성이 많이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또 이전된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건물이 생기는 것도 찬성하기가 어렵다. 이전할 거라면 그 자리를 국민들에게 공원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매각’으로 방향이 잡혔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언제나 ‘변방의 북소리’였다. 하여간 내 의견은 그렇고, 틈만 나면 그런 식으로 의견을 낸다.

건설정책 목소리 내야

이건 조금 다른 문제지만, 한전이 정책적인 측면에서 건설정책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올 가을 국감에는 기획국감으로 해볼려고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이, 주상복합과 전기사용 양식에 관한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면 복잡해보이지만, 결국은 고층빌딩 특히 고층 아파트의 공조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고층 빌딩에 창문을 열 수 없어 온도조절은 물론 실내공기까지 공조장치의 도움을 받는데, 그러다보니 어지간한 집에서는 전기요금이 백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고 누진제를 없앨거냐? 그러면 전기요금 인상에서 국민적 저항을 받는다. 재개발과 함께 추진되는 주상복합이라는 양식은 에너지 특히 전기라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은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주거양식의 대안에서 한전이 아무 것도 제시한 바가 없다. 무조건 많이 발전하고, 많이 쓰게 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고, 쓸데없는 낭비는 발전 당사자가 줄일 수 있는 패턴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야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해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올 국감에서 나는 국회를 통해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니, 미리 준비를 좀 하시기 바란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는 심정이 좀 복합적이다. 개별 발전사 입장에서 현재와 같은 정책 흐름으로 간다면, 회사마다 조력발전 하나씩 가지면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복잡한 것들을 대규모로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개별사는 조력발전으로 가는 게 ‘약은 방법’이기는 한데, 이게 국가적으로도 과연 옳은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자가 차분하게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로림은 첫 사업이라서 어떻게 넘어갔지만, 강화도의 조력은 이게 국가적으로도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장기적으로 조력발전이 긍정적인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 정권에서 생태는 어차피 장식품이지만, 같은 한나라당 내에서 조금 더 생태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경우, 이런 시설물들은 시민적 저항을 받아 결국 정권 차원에서 ‘뜯어내기’ 결정을 할 가능성도 높다. 개별 발전사에게 옳은 것과 사회적으로 옳은 것 사이에 딜레마가 있는데, 한전이나 관계당국이 조금은 거시적으로 사태를 분석해보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기후변화협약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기후변화협약’을 둘러싸고 어수선하고, ‘카본 펀드’처럼 새로운 개념의 흐름이 나오기는 하는데, 진짜로 도움이 될 뭔가를 우리가 하고 있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면 여전히 의문 부호가 많이 붙는다. 기본은 합리화와 수요관리인데, 한전이 합리화를 하고 있느냐면 이것도 잘 모르겠고, 수요관리에 관심이 있느냐고 하면, 여전히 공급사의 시각을 너무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전 부문을 떼어내고 배전만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전은 우리나라의 전기 정책 그리고 종합적으로는 에너지에 대한 거시적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야말로 일반 ‘업자’처럼 공급자의 시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든다.

탄소세 도입 검토해야

탄소세에 대해서는, 최근에 내 입장이 조금 변했다. 총리실에서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던 시절에 나는 탄소세 도입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유가에 대한 세금이 너무 높을 뿐더러, 유가에 대한 장기적 탄성치 특히 교통 부문에서의 탄성치가 그렇게 높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유가가 올라가면 자가용 수요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6개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높아진 유가에 적응 한다. 내가 기준을 잡았던 것은 경차 판매율과 ‘스틱 기어’로의 전환 두 가지이다. 유가를 견디다 못하면 사람들이 경차로 바꿀 것이고, 더 힘들어지면 30% 정도는 기름을 덜 먹는 수동기어로 바꿀 것이다. 한국에서 대량적으로 경차로 전환된 것은 IMF 시기가 유일했고, 수동기어로의 전환은 최소한 자가용에서는 발생한 적이 없다. 아마 유가에 탄소세를 전격적으로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최초 충격이 수 개월은 있겠지만 그게 과연 국민들이 소비패턴을 조정해서 탈탄 경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효과는 불분명한데, 조세저항 혹은 국민적 저항은 확실한 정책, 그런 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건 아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수도권 대기정책과 교통수요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탄소세를 도입하고 서울 등 대도시부터 최소한 버스를 무료로 만드는 정책을 디자인해보는 중이다. 그래서 탄소세 도입을 올해부터는 주장하기 시작할 것인데, 아마 수 년 내에 부분적으로라도 도입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전력 부문도 어느 정도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휘발유에 탄소세가 붙일 때, 석탄만 빼놓고 가기는 어렵다.

국민에게 사랑받을려면

마지막으로 사원 복지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자. 최근 청년 실업과 함께 한전그룹의 대학생 선호율이 부동의 1위인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상황인데,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하지 않는 한전에 대해서 개인적인 고마움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한전이 가지고 있는 대학생 자녀에 대한 등록금 지원은 회사 복지 형태로 온 한국 교육의 특수한 산물이기는 한데, 이걸 융자로 바꾸라는 압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원에서 융자로 바뀌면 대학생 자녀를 둔 직원들이 정말 코피 터질 것 같기는 하다. 정책적 해법은 훨씬 늦을 것이기 때문에, 수년간이라도 이 제도는 좀 지켜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특채나 개방직 같은 게 없는 한전의 특성상, 처장급으로 가면 너무 ‘동동교배’로 인한 균질성으로 인하여 경영상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우려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한전은 한국에서 거의 마지막 종신고용의 모델이기도 하다. 일본도 최근 종신고용으로의 복귀에 대한 정치권에서의 논란이 있는데, 나는 종신고용 체계를 흔드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꼭 그렇게 해서 회사가 더 효율적으로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첫 직장이었던 현대건설 혹은 삼성 같은 곳을 보면, 대리 말년차 혹은 과장급에서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효율적일까? 별로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선거는 잠깐이지만 운동은 계속된다”는 말이 있다. 아마 앞으로도 선거는 무수히 있을 것이고, 정권도 바뀌고 또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또 한전 간부들이 각 정치권에 줄을 대고, 또 그렇게 줄을 댄 사람들 중 일부가 사장으로 오는 그런 일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는 영원히 필요하고, 전기도 영원할 것이고, 생태계도 영원할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가끔은 가슴에 손을 얹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법”이라는 질문을 해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가끔 생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