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승일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녹색성장위원회 위원)

2009년은 우리나라 스마트 그리드 사업의 원년이었다. 그 동안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논의되어 왔던 스마트 그리드가 불과 일 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보통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관심거리가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진행되어온 일을 돌이켜 보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우리나라의 저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지난 2월 녹색성장위원회는 2030년까지 국가 단위의 스마트 그리드를 세계 최초로 구축하기로 발표하였고 이러한 정부의 의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7월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가 스마트 그리드 선도국가로 지명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제주도에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를 만들기로 하였고 이를 건설하기 위한 컨소시움을 구성하였는데 여기에 160여개가 넘는 기업들이 참여하여 스마트 그리드에 거는 기업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아울러 지식경제부 산하에는 스마트 그리드 사업단이 구성되었고 민간에서는 기업들의 연합체인 스마트 그리드협회가 창설되었는데 회원사가 벌써 100여개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2009년이 스마트 그리드 사업의 기반이 되는 토대를 마련하는 한 해였다면, 2010년은 이 사업의 구체적 모습을 그려내고  정부, 기업, 대학 및 연구계가 각자의 역할을 찾아 긴밀한 협조 바탕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정부는 스마트 그리드 사업이 지속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국책 사업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더욱 노력 할 것을 당부 드린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스마트 그리드라는 새로운 시장에 전력을 다해 뛰어 들어 왔고 장기적인 국가의 지원방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먼저 깃발은 들고 나왔다 하지만 정부의 장기적 예산 지원과 정책이 부실하다면 구호만 요란하고 내실은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여 여기에 걸 맞는 예산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단계별 마일스톤을 제시하여 기업들이 미리 준비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R&D 체계를 재정비하여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여기에 필요한 연구개발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 1997년 12월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교토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교토 의정서에 따르면 39개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정부는 2020년 국가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대신, 원자력 발전과 녹색 에너지원의 비중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과 같은 녹색 에너지 발전원들은 자연 현상의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급격히 변화하는 특성이 있다. 즉, 발전량 예측 및 출력량 조정이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의 녹색 에너지를 기존 전력망에 접속시킬 경우, 전력망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하기가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마트 그리드가 필요하다.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 기술인 전력통신, 시스템제어, 에너지저장 등의 기술을 활용하면, 대규모 녹색 에너지 발전원을 전력 계통에 안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자동차를 위한 충?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스마트 그리드가 필요하다. 작년 10월 정부는 2020년까지 국내 소형차의 10% 이상을 전기자동차로 보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전기자동차 사용자는 전기 가격이 싼 심야시간을 이용하여 배터리를 충전하였다가, 가격이 비싸지는 낮 시간대에 주행을 하거나 혹은 전기를 되팔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발전 또는 소비의 규모가 상당히 크면서도 그 양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전력 공급자 또는 소비자의 추가를 의미한다. 계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전력망이 이를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전력공사는 스마트 그리드 건설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즉, FACTS, HVDC 및 초전도 기기 등 신기술들을 개발 및 이용하여 기존의 전력망을 스마트 그리드로 바꾸는 구체적인 방안을 한전이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전력망에서는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한 품질의 전기를 공급한다. 반면에 스마트 그리드 기술은 다(多)품질의 전력을 소비자에 따라서 달리 공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즉, 반도체 공장과 일반 가정은 각자에게 알맞은 품질의 전기를 각기 다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합리적인 전력소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전력거래소는 우선적으로 전력시장의 활성화에 보다 힘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실시간 전력요금제도 또는 변동요금제도를 정립하고, 이러한 실시간 가격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력소비자는 마치 온라인으로 주식을 거래하듯이, 전기가 쌀 때 사서 쓰고, 비쌀 때는 사용을 줄이거나 되팔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력거래소는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합리적인 전력시장을 위한 개선 방안 및 안정적인 계통 운영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일반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도 생잔 제품과 기업 자체의 설비에 스마트 그리드 관련 기술을 도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매시간 전기 가격을 주시하면서 가전기기를 사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에어컨과 세탁기와 같은 일반 가정기기는 변동하는 전기 가격 및 날씨와 같은 외부 조건들에 맞춰서 동작 시간을 자동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초고층 빌딩 및 신규 아파트 등을 건설할 때, 건물 자체에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녹색 에너지 설비를 갖춤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야 한다. 이러한 건물의 대표적인 예가 제로 에너지 빌딩이다. 이 빌딩은 녹색 에너지 설비를 이용하여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전력량이 소비량보다 작을 때는 외부 전력망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오고, 반대의 경우에는 여분의 전기를 외부 전력망에 공급하거나 배터리와 같은 에너지 저장시설에 저장한다. 그럼으로써 연간 기준으로 평균 에너지 사용량을 ‘제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세종시 및 혁신 도시와 같은 신도시 건설에 이러한 제로 에너지 빌딩들을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해외의 경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및 스페인의 말라가 등에서 지능형 청정도시 혹은 스마트 시티(Smart City) 등의 이름으로 친환경 스마트 그리드를 도시 전체에 적용하기 위한 초기 단계가 이미 진행 중이다.

또한 기업들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및 충?방전 시스템 등 새로운 운송 수단에도 투자를 확대하여야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기자동차의 사용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사용자가 이를 편리하게 충?방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설비가 적재적소에 설치되지 않는다면, 전기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여 이익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제품에 접목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 및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전력 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규모가 크며, 안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전력 산업은 100년 전 에디슨(T. Edison)과 테슬라(N. Tesla)가 근간 이론과 기술을 만들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과 기술은 전력망과 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 데에는 불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먼저 스마트 그리드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및 커리큘럼을 개발하여야 한다. 아울러 스마트 그리드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프로그램을 산업체들과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개발 및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12월 27일에 우리나라는 한국형 원전 4기를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기로 합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총 수주 액은 400 억 달러로 이는 단일 수출 프로젝트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며, 이를 통한 부가가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원전을 고속열차에 비유한다면, 스마트 그리드는 고속열차가 사고 없이 방방곡곡을 누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속철도에 해당된다. 기존의 철로로는 고속열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고속철도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고속열차는 곧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스마트 그리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와 관련한 사업을 이제 막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관련 제도의 개선, 스마트 그리드 시범 단지의 건설, 스마트 그리드를 운영하기 위한 설비들의 개발 및 최적 운영방법의 개발 등 아직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단일 기관의 노력만으로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가 성공하기는 힘들다. 대신에 정부 기관 및 지자체,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을 비롯한 관련 산업체, 대학과 연구 기관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즉,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체가 노력하여야 한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스마트 그리드 강국으로서의 선진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