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발전노사가 파업돌입(사진 위)과 단협해지(사진 아래)입장을 각각 발표하고 있다.

발전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목적지가 정반대다. 잠시 정차해 숨을 고르던 두 열차는 서로 다른 ‘종착역’을 향해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일 발전노조는 조합간부만이 참여하는 ‘부분파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6일 하룻동안 필수유지 인력을 제외한 전 조합원에게 파업을 지시했다. 조합간부를 지명한 부분파업 이유에 대해 발전노조는 회사측에 교섭태도의 진성성을 조금이라도 기대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최소한의 부분파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런 가운데 노사양측은 3일 대표교섭을 갖고 09년 임금 및 단체협상의 ‘이견’ 조정을 시도했다. 결론은 ‘결렬’이었다.

4일 사측을 대표하는 발전5사 사장단은 지식경제부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고질적인 노사분규와 반복적 파업으로 얼룩진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단체협약을 해지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사측이 단협을 해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발전노조는 5일 “교섭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고, 의도된 계획속에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파업을 부추기고 있다”며 “6일 예정된 필수유지 전면파업을 진행한 후 자율적인 임단협 타결을 위해 잠시 파업투쟁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6일 발전노조를 포함한 공투본은 과천 정부청사에서 파업결의대회를 갖고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춘투로 유명했던 노동조합의 투쟁이 ‘동투’로 옮겨지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발전노사 사이에 11월과 12월은 가장 불안한 노사관계의 달이 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택하자, 사측은 단협 ‘해지’로 맞불을 놓았다. 2002년 파업 이래 발전노조는 이번 부분파업까지 총 3차례에 걸쳐 파업을 진행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노조는 발전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겨울’을 맞이한 발전노사의 ‘관계’가 어디로 치달을 것인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측 ‘단협 해지’로 선전포고?

노무주간사를 맡고 있는 이길구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4일 과천 정부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서 발전5사 사장단이 배석한 가운데 ‘발전회사 사장단 합동기자 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기자회견문의 요지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현재의 단체협상을 해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이날 “발전회사 경영진은 오랜 기간의 고심과 숙고 끝에 고질적인 노사분규와 2002년 38일간의 1차 파업을 비롯해 2006년도 2차 파업과 근무지 집단이탈 등 반복적 파업으로 얼룩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선진 노사관계를 정립하고 현행 단협의 불합리한 조항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통한 해결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사장은 그러면서 “현재의 단체협약이 해지되어도 직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종전과 같이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경영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조합활동 보장 등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한 권리와 의무관계만 6개월 후에 효력이 소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또 “(발전노조)파업의 조기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전력의 안정적 공급으로 국민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며 “발전회사는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을 위협하는 불법사례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의해 엄정하게 대응하되, 대화 창구는 계속 유지해 단협해지 이후의 노사관계가 원만히 수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단협해지 발표에 앞서 이 사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발전산업노조는 나라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가경제와 국민경제를 볼모로 집단 이기주의적인 주장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주인인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일탈행위이며, 필수공익 사업인 발전산업의 공공성을 외면하고, 국가경제의 어려움과 국민생활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으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발전사 사장들은 이날 노조가 주장한 노조활동 관련 해고자는 즉각 복직한다는 조항 신설, 조합원 범위를 과장급(5-4직급)까지 확대, 근무시간중 조합활동을 노조 임시대회까지 유급 인정, 경영개선을 위한 신기술 도입시 노조 합의, 노조활동 전임자 인원 증원(13→15명) 등 발전노조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측이 “벼랑 끝 파업으로 몰아”

사측의 단협 해지 발표가 나오자 발전노조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예정됐던 6일 하루 동안의 파업도 필수근무 인력을 뺀 나머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사측 발표에 대해 발전노조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유지하며 합법적인 파업을 함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집단이지주의적인 일탈행위라고 선전하는 사측의 기만적인 행위에 너무나 어이가 없다”며 “노동조합은 발전회사 경영진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경영에 대해 역할을 다할 것이며, 누가 진정으로 발전산업의 공공성을 지키고 있는지 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또 “6일 파업이후 자율적인 임단협 타결을 위해 잠시 파업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설 것”이라면서 “그러나 사측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발전노조의 운명을 걸고 필수유지 근무자를 포함한 총파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생산의 타격을 주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그러면서 “단협 해지를 서둘러 통보한 사장들의 오판으로 인해 향후 노사관계는 더욱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면서 “향후 발생하게 될 모든 책임은 조직정치적 행동으로 이 상황을 연출한 노무주간사 발전회사 사장이 분명히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6개월째 단체협상, 노사 쟁점은?

발전노사는 지난해 7월부터 단체협약 갱신을 위해 지난 3일까지 21번째 교섭을 진행해 왔다. 단체협약은 모두 149조항에 이른다. 발전노조에 따르면 노사는 이중 6개 조항(신설 2개ㆍ갱신 4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지난 10월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3차에 걸친 조정은 ‘소득’없이 중단 됐다. 그리고 노사 양측은 지난 3일 21번째 교섭을 진행했지만, 기존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조합원 범위를 과장급(5-4직급)까지 확대하려는 이유에 대해 발전노조는 한전에서부터 5직급(5-1. 2, 3, 4)까지 조합원이었고, 2002년 노동조합 파업 이후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5-4직급에 대해 노사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비조합원이 됐다고 주장했다. 직무의 성격상 사용자성이 없고, 도입 취지 자체가 노조의 단체행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존 조합원 영역의 정원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노조활동 전임자의 인원 증원(13→15명)에 대해서도 현행 13명은 2002년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로 결정된 것으로 당시 조합원은 5,000여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조합원이 7,000여명으로 증가돼 전임자 2명의 증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발전회사 입사시 자동으로 조합에 가입되는 유니온샵(Union Shop) 제도와 사용자성 직무(인사, 노무, 감사, 안전)의 조합원 제외에 대해 유니온샵 제도는 공공기관 노동조합에서 대부분 적용되고 있고, 인사, 노무, 감사 등 조합원은 실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조의 간부 징계요청권, 발전회사간 인력교류시 협의, 근로자 채용시 노조의 추천권 등에 대해서는 노조사무실 및 조합활동 근태 등 노조법상 범위내에서 최소한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조합간부 인사 이동시 노조 합의 내용에 대해서도 선출직 위원장, 본부(지부)위원장 및 전임자(13명)에 관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발전 노사, 종착역은 어디?

사측이 단체협약 해지를 선언함에 따라 임금과 근로조건 등을 제외한 조합비 일괄공제, 유니온숍도, 노조 활동 전임자를 인정하던 기존 단체협약 사항은 앞으로 6개월 후 효력이 상실하게 된다.

발전노조의 이번 파업은 밖으로는 정부의 공기업선진화 정책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 표명과 동시에 정원감축, 신입사원 임금삭감, 성과급 삭감, 구조조정 등을 강행하고 있는 사측에 대한 저항임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노조는 이번 단협 해지가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임금 삭감, 복지 삭감, 연봉제 도입, 성과경쟁 확대, 인원감축과 전환배치,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 노동조합의 벽에 가로 막혀있던 것들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사측의 ‘의지’로 판단하고 있다.

‘단협 해지’를 들고 나온 사측도 여기서 밀리면, 공기업 선진화를 완수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소모적이고 투쟁을 일삼는 노사관계 환경”을 “선진 노사관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파업’과 ‘단협 해지’라는 맞불을 놓기 시작한 발전노사의 ‘관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 새삼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