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함 감수하며 지키는 예의

“아니 평소에는 차지 않던 시계를 왜 차고 계십니까?” 사실 A씨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어서 평소에는 시계를 차지 않고 다녔다. 금속으로 된 시곗줄뿐만 아니라 가죽으로 된 줄이라도 버클 부분이나 시계 뒷면의 작은 금속이라도 피부와 접촉을 하면 어느새 벌겋게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그런 A씨가 거래처의 B씨가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고는 얼른 시계를 찼다. 그 시계를 선물한 사람이 바로 B씨이기 때문이었다.

B씨는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시계가 없는 A씨를 위해 시계를 사가지고 와 선물을 했다. 금속 알레르기 때문에 시계를 차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는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계’를 선물하면 A씨가 기분 좋게 생각할 것으로만 알았다.

B씨가 선물로 사 온 시계를 내밀 때 A씨는 속으로 난감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호의적으로 사다 준 선물을 마다할 수도 없어서 “시계가 없어서 불편했는데 잘 됐다”며 고맙게 받았다. 만족스러워 하는 A씨의 모습을 보면서 B씨도 “선물을 제대로 골랐다”며 흐뭇해했다. 그래서 A씨는 평소에는 시계를 차지 않다가도 B씨나 그의 회사 사람과 마주할 때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꼭 시계를 찼다. 그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다.

■ 작은 선물도 고뇌의 산물

며칠 전에 설날이 지나갔다. 그 며칠 전에는 거래처에 선물을 돌리느라 시내의 교통이 무척이나 혼잡했다. 명절 전에 돌리는 선물의 대부분은 ‘을’로부터 ‘갑’에게 전해진다. 선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임에도 매번 ‘무엇을 선물해야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우선 가격이 문제이고, 품목도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다.

사실 명절 전에 ‘갑’에게 돌리는 선물은 선물이라기보다는 ‘관행적인 뇌물’의 성격이 강하다. 어쩌면 명절 전에 ‘갑’에게 돌리는 선물은 ‘진심이 담긴 감사의 선물’이 아니라 ‘약자’가 오랜 고뇌 끝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짜낸 고혈일 수도 있다.

많은 돈을 들일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는 선물 구입자금을 마련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가격에 맞추면 선물의 질이 떨어지고,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하려다 보면 가격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잘 보이기 위해 돌리는 선물을 대충 아무거나 골라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색나지 않는 선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돈은 돈대로 들이고 욕을 먹는 바보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한번쯤 그 선물이 많은 고뇌의 산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용부담에서부터 품목 선정까지 어려움을 겪었기에 받은 사람의 반응도 궁금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런데 선물을 받고도 입을 싹 씻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내가 못 받을 것 받을 것도 아니고 받을 만하니까 받았는데 왜 고맙다고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갑’에게 갈비세트를 선물하면서 “내 목구멍으로 들어갈 것이라면 이렇게 비싼 갈비를 사지 않는다”며 심정을 토로했다. 작은 선물이라도 받았다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좋다, 고맙다, 잘 먹었다는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