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가격 인상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럽다. 지식경제부는 4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고유가 대응을 위한 에너지 수요관리 대책’을 밝히고 원가보다 낮은 에너지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보고했다. 지경부는 이달 안에 전기요금 체제를 개선하는 계획을 세우고 순차적으로 요금을 인상할 방침이라고 한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뛰거나 전력수요가 치솟는 여름철 이맘때 쯤 정부가 들고 나오는 대책이 바로 수요관리 대책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들은 왜곡된 에너지 요금 체제와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억지로 짜낸(?) 것들 이라  ‘땜질식 대책’이란 언론의 물매를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기요금을 싸게 설정해놓고 에너지 절약을 외치고 수요를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태생적인 한계였던 것이다. 이번 정부 대책이 돋보이는 것도 에너지가격 기능을 회복시키겠다고 나선 대목이다. 정부는 원유등 원료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도 자동적으로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이 제도 도입은 저가 에너지정책의 만능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여건이 마련될 단초(端初)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전기 가스의 연료비 연동제는 우리 사회와 산업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 그래서 나온다.

정부가 서민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에너지 가격을 올리겠다고 나선 것은 최근 꿈틀대는 국제 유가와 에너지 과소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신에 따르면 유가는 언제든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 게다가 국내 원유 수입의 약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가 지난해 12월보다 2배 가까이 올라도 국내 소비는 오히려 크게 달라지지 않는 에너지 과소비는 여전하다. 금융 위기 여파로 경기가 주저앉아도 원유 수입은 오히려 늘고 있는 기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상황인식인 것 같다. 국제 유가가 10%만 올라도 경상수지가 연간 20억달러 줄고 국민총생산이 0.2%나 위축되는 처지인 우리경제에 안길 충격파를 걱정하는 정부의 위기감이 이번 대책을 내놓은 배경이라고 평가한다.

시장에 정확한 가격 시그널을 알리는 것 못지않게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도 요금 현실화는 바람직하다. ‘콩 가격이 오르면 자연히 두부 가격이 오르는’ 시장원리 자체가 배제된 한전으로선 요금에 관한한 무책(無策)이다.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이 널을 뛰어도 마음대로 요금을 올리고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명확한 인상 요인이 발생해도 외면해온 정부와 국회의 ‘칼자루 휘둘기’ 행태도 한전 부실화를 거들었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데도 물가와 표를 의식한 주체들의 무소신, 무책임이 이같은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크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민경제에 민감한 생계형 물가 안정책을 다시 꼼꼼히 챙겨야 국민들의 충격파를 줄일 수 있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전기 요금 인상이 가져올 국민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더 이상 방치하면 더 큰 부담을 국민에게 안긴다는 점을 숨김없이 알리고 소통할 것을 주문한다. 모처럼 ‘뜨거운 감자’인 전기요금 인상 건을 들고 나온 정부가 종전의 ‘폭탄(뜨거운 감자) 돌리기’를 하다 마는 행태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정부는 에너지 가격정책의 변화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경제 주체 모두가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을 높여 고유가의 파고를 넘는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합리적인 에너지 가격이 국가 명운을 건 저탄소 녹색성장의 출발점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