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배고픔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던 1958년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출발한 원자력 역사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정부와 산·학·연은 8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원자력 반세기를 기념하는 행사를 연 것을 필두로 올해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은 기념행사를 ‘반쪽 행사’가 아닌 ‘연합행사’로 치렀다는 것이다. 원자력과의 인연이 태생적으로 조금씩 달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한계를 뛰어 넘은 주체들이 하나로 뭉쳐 대내외에 원자력 반세기의 의미를 알리고 미래의 비전을 선포한 점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참석 예정이던 VIP가 자리하지 않아 행사의 무게감이 떨어진 것은 아쉬움이 남지만 원자력인 모두가 새로운 출발점에서 마음을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행사 기획은 성공작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가 걸어온 지난 반세기의 원자력 역사는 원자력인의 불굴의 도전정신과 응집력이 빚어낸 피와 땀의 발자취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처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것처럼 폐허 속에 뿌린 원자력의 씨앗은 첨단기술의 요람 역할로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하는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국민소득 80달러 시대에 고급 인력이 전무하고 예산조차 변변치 못한 불모지의 여건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원자력기술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경이적인 일이다. 선배 원자력인의 사명감과 헌신적인 노력에 기반한 반세기의 역정(歷程)에 다시 한번 경외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원자력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했다. 원전 설계와 설비제작 능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러 원전을 수출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등 선진 국가들이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과 운영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을 만큼 원전 강국의 지위에 올랐다. 원전 20기를 가동하는 세계 6위의 원자력발전국인 우리나라는 93.4%의 원전 이용률 달성하는 성과도 거뒀다. 발전연대기에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로 국가경제의 버팀목이 돼온 원자력은 최근 경기침체의 위기 국면에서 우리나라의 수출산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서 국민에게 새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새로운 반세기를 시작하는 원자력계는 이제 제2의 도약대 앞에 서 있다. 고유가 파고와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대안에너지로 부상하면서 원전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추가 건설되는 원전 숫자만 하더라도 약 300기에 달할 정도로 원자력이 각광받고 있다. 시장규모가 어림잡아 1,000조원대에 달한다. 정부도 원자력을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축으로 놓고 연구 개발과 해외 수출에 국가적 역량을 집결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버팀목이 돼온 원자력은 앞으로 녹색성장과 생존의 핵심에너지원으로서 그 역할이 더욱 증대될 것이다.

‘미래 에너지 원자력이 청정에너지의 꿈을 담아 다음 반세기를 이어갈 것’이라는 원자력인의 슬로건이 다짐이나 바람에 그쳐서는 안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원자력인의 의지와 꿈이 현실로 올곧게 구현되도록 마음자세를 다시 가다듬고 내일을 향해 뛰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원자력계의 숙원인 완전한 기술 독립을 앞당기는 노력이 시급하다. 2% 부족한 기술 독립국의 숙원을 풀어야 막대한 로얄티를 주지 않아도 되고 제 3국에 수출할 때도 선진국에 동의를 구하는 일도 없어진다. 막바지에 다다른 핵심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길은 미래의 방향타를 정확히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전략과 노력, 여기에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 수출이라는 쾌거를 일궈낸다면 우리나라의 전력사는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다.

원자력이 성장동력의 맨 앞자리에서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안전성 확보에 정진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희망의 에너지가 되는 것은 전력계에 부여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국민의 아낌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원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불신을 없애고 그 바탕위에 두터운 신뢰를 쌓아나가야 가능하다. 원전에 문제가 생기면 기적의 반세기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수출도 공염불이 될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적정 설비개선 투자가 제때 이뤄지도록 원자력계가 힘을 모아야 할 대목이다. 그래야 안전 인력을 줄여 예산 절감을 꽤하는 소탐대실의 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