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감축을 둘러싸고 전력그룹사 노사 갈등이 점차 증폭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력그룹사가 2001년까지 단계적 감축 예정이던 정원을 연내에 마무리 짓기로 결정하자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노사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측은 정원을 줄이지만 현원은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예정이라 당초 선진화 계획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정원을 일시에 줄인 상태에서 현원까지 한 번에 감축될 수 있고 신규 채용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전력그룹사 이사진들의 정원감축안 통과 작전은 마치 국회의 날치기 법안 통과 장면을 연상케 해 씁쓸하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안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이사회에 상정, 처리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다. 더욱이 노조 측이 저지에 나서자 007작전을 방불케 하듯 회의장을 옮겨 의결절차를 서둘러 마무리 지은 행태는 옹색하기 그지없다. 구조조정과 같은 사안은 사려 깊은 고민과 대책을 갖고 정교하게 추진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통과 대화의 창구를 막고 ‘혁신의 군기’만으로 가시적인 실적을 보여주기에 급급한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를 경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정원감축 사태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어 노사 양측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아 보여 걱정이 앞선다. 전력그룹사가 당초 정원 감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에서 급선회한 것은 회사 측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노조도 청와대 주재 선진화 진도 점검 회의를 앞두고 회사가 무리하게 감축안을 처리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정권 후반기에는 공기업 구조조정이 탄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앞섰을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공기업 노사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공기업 경영진을 움직이는 것은 자율을 해치는 월권이다. 전 정권에서 보듯 성과내기의 조급증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은 현 정권이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공기업의 내실있는 구조조정은 타당하지만 성격과 기능이 다른 공기업을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선진화 계획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기술집약적인 전력그룹사의 특성상 무리한 감원은 자칫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전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한수원의 경우 현재 건설중인 신고리1,2호기와 신월성1,2호기에 투입하는 시운전 요원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발전소 건설 후 투입될 운영요원도 부족해 인력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 건설해야 할 원전이 줄 서있고 국가의 신성장동력인 원자력 수출에 나설 인력이 제때 충원돼야 할 시기라는 점은 전력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는 현안이다. 지금 당장 사람을 뽑아 교육시켜도 적기 현장 투입이 빠듯한데 인원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한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 줄이는 인원 감축에 매달리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일거리 창출’후에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방향으로 수순이 바꿔져야 위기의 반전이 가능하다. 특히 전대미문의 극심한 경기 침체기를 맞아 고용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전력 공기업이 위기의 완충지대이자 지렛대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인력을 솎아내는 것보다 생산성을 끌어올려 사회 전반에 일자리가 창출하도록 기여하는 것이 공기업의 선진화일 것이다. 특히 노사 갈등의 골이 깊어져서는 위기 극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권과 인심(사람의 마음) 그리고 위기 극복의 공동체 의식이 빠진 자리에 사람 자르는 칼부림만 자리한다면 선진화의 희망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