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늘 갈 수 없는 곳 혹은 가보고 싶은 곳을 상상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대로망이다. 사람들은 마음이 넉넉해야 이런 상상을 한다는 데, 나는 오히려 주머니가 가볍게 느껴질 때, 가지 못한 곳들을 주로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하긴, 어차피 가기가 쉽지는 않은 곳이라서 상상하는 데에 돈이 들지는 않으므로, 아주 저렴하게 상상 여행을 떠나보는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죽마고우가 삼성에 다니고 있는데, 이 친구는 매주 로또를 사고, 삼성을 그만두는 것을 꿈으로 가지고 있다. 그 때마다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삼성이 그만두고 싶으면, 그냥 그만두면 되쟎아. 그러나 갈 수 없는 곳을 상상하는 것은, 로또보다도 더 저렴한 로망이다. 로또만큼도 돈이 들지 않고, 필요한 책은 도서관에서 읽고, 가끔은 구글 이미지에서 매력적인 그림들도 찾아보고, 정말 돈 들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여행이다.

지난 여름 요코하마의 해양박물관에서 매력적인 경험을 한 이후로 나는 한동안 대항해에 대한 꿈을 꾸었는데, 마침 호주-뉴질랜드의 20일짜리 저렴한 선박여행 코스가 있어서, 딱 이거다, 하고 그렇게 해서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에 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환율이 엄청나게 올라버렸다.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에서도 영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갈 정도로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아무래도 경제학자로서 지금의 환율 국면에서 해외에서 놀다 왔다고 하면 욕 먹을 것 같아서, 바다 여행은 다음 기회로 일단 미루었다.

그래도 사람은 늘 신나는 생각을 해야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법, 뭐 좀 재밌는 거 없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사하라'에 딱 꽂혔다. 파리 유학 시절, 아프리카 경제학을 꽤 열심히 공부한 편이고, 사하라에는 벌써 갔었다. 마라케시 쪽에서 붉은 모래로 된 북부 사하라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본 사하라 중에서 가장 멋있었던 것은, 탄자니아 가면서 바행기 위에서 보았던 밤 사막이었는데, 푸른 빛이 감도는 밤의 사하라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사하라의 배미라고 할 수 있는 사하라 관통은, 아직 못해봤다.

내가 꾸었던 꿈은 늘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은 좀 하는 편이다. 가까운 방송 PD들과 사하라에서 다큐멘타리를 찍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중이기는 한데, 어쩌면 진짜로 카메라를 끌고 4륜차 2대로 사하라를 관통할지도 모르겠다. 사막 사파리는, 2대가 안되면 들어가지를 못하게 한다. 사하라는 우리에게 아주 먼 곳일까? 그렇지는 않다. 알제리를 시작으로 사막에서 석유가 나기 시작하면서, 이 사하라를 둘러싼 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니제르에 우라늄 광산이 생겨나면서 아주 중요한 자원의 기지처럼 되었다. 뭐, 말이야 갖다 붙이기 나름이기는 한데, 어차피 나는 무분별한 지금의 자원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원이 없는 한국으로서 아프리카는 여전히 중요한 국가들이고, 또 그 아프리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바로 사하라 사맊이다. 두둥! 자원외교 시대, 사하라를 가다, 약간 속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사하라에 가볼 꿈을 꾸면서, 연말,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심각한 사태들의 쓰린 마음을 달랜다.

내년에도 환율은 내려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발전회사들의 해외지사나 사무소도 축소되거나 철수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 말은 국제 외교라고는 하지만, 정작 그런 외교와 활동의 근거지들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단기적 시각, 이걸 말해 뭐하겠는가? 해외인력을 더 확보하고, 해외망을 강화시키라는 말을, 본사 인원들도 뭉텅뭉텅 축소하는 지금, 어느 누가 들어주겠는가? 나는 그냥 계속 사하라 꿈이나 꿀련다. 그러나 자원 해외망, 중요하기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