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수 아버지와 아픈 아들
 
지난 11월 26일 부산의 한 병원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술이 있었습니다. 부산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무기수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자기의 일처럼 매달려 수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쓴 교도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난 9월 중순 부산교도소 홈페이지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현재 29살인 형이 만성신부전증으로 당장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나 자신과 친척들은 적합성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마지막 희망으로 무기수로 수형생활 중인 아버지(55세)가 있는 부산교도소에 노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틋한 사연을 접한 부산교도소는 도움을 주기 위해 법률적 검토를 하였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정기관은 수용자의 건강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수용자의 건강을 위한 수술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수용자의 장기를 떼어 타인에게 이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수형자의 건강이 나빠지면 안 되니까요.

  희망이 사라지자 구미에서 동생(27세)과 두 형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40세)이 교도소를 방문해 보건의료과 교도관을 만났습니다. 그 교도관은 사장으로부터 형제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린나이에 부모가 이혼을 한 형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할머니 손에 컸지만 누구도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아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러 무기수라는 것을 2년 전에 알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의 자상하고 다정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산산이 부서지는 그 순간 형제는 무척 힘들었으나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좁은 접견실 너머의 아버지는 어느새 성인이 된 두 아들을 보면서 내내 미안하다며 흐느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들썩이는 어깨 너머에서 망각 속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원망도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사장은 교도관에게 형제의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착실하고 성실할 뿐만 아니라 형제간의 남다른 우애는 옆에서 보기 부러울 정도여서 자신이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형제의 행복을 위해 신장이식 수술비도 부담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무부의 도움을 구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도관은 사장을 보면서 요즘 세상에 남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 모든 게 불가능한 상황

  그때부터 그 교도관도 발 벗고 나서서 형제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교정시설 수용자가 장기이식을 한 사례가 2003년 이후 4~5건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가능성이 있으리란 생각에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구체적인 파고들어갔지만 이내 벽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 전에 장기이식을 한 수형자들은 형기의 40% 이상을 지낸 징역2년~5년의 단기수형자들이었습니다. 무기수가 수형생활을 7년 정도밖에 하지 않은 상황에서 형집행정지가 가능할 리 만무했습니다.

  적합성검사결과가 일치하더라도 검찰에서 형집행정지가 결정되어야 이식수술이 가능하지만 동생이 법무부에 ‘일단 신장이식이 적합한지 검사라도 받게 해달라’고 진정하여 일단 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교도관은 무거운 마음으로 수술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구미에서 아버지가 있는 부산의 M병원으로 전원한 형은 적합성검사를 위해 병원에 온 무기수인 아버지와 교도소가 아닌 담장 밖에서 만났습니다.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수갑과 포승을 찬 아버지의 손을 잡은 큰아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뜨거운 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적합성검사는 5~6번의 외래진료를 해야 하지만 수형자란 신분이기에 교도소 측은 병원에 협조를 구하여 3회에 검사를 완료했습니다.

  10월 29일, 적합성검사 결과가 일치한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11월 26일 수술예정이어서 이틀 전에는 입원을 해야만 했습니다. 동생과 회사사장은 형집행정지가 될 수 있도록 간절한 심정으로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거기에는 교도관이 쓴 탄원서도 첨부되었습니다. 

  담당검사는 찾아온 교도관에게 살인을 저지른 무기수에 짧은 수형생활만으로도 불허결정이 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도관은 법률적 절차를 충분히 공감했지만 형제와 회사 사장, 아버지의 모범적인 수형생활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며 검사를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해주고 싶지만 법을 집행자로서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교도관의 할 일은 형집행을 제대로 하는 것인데 아무리 인간적인 동정이 가더라도 가족의 형집행정지 신청에 개인적인 탄원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교정공무원으로 모순이 있는 것”이라고 질책을 하면서 다음부터 신중하게 할 것을 충고해주었습니다. 형집행정지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 하나도 아프지 않은 수술

  형제는 언론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보를 받은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교도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교도관은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언론사에서 취재에 들어가자 검찰도 고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11월 23일 인터넷에 뉴스가 올라오면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녁 SBS 8시뉴스에 보도된 이후 24일에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보도를 했습니다. 언론보도는 무척 동정적이었습니다. 검찰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가능’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부산교도소에서는 형집행정지 결정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아버지를 입원시켜 수술 전 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날따라 다른 수용자가 수술을 받고 입원하는 바람에 직원들의 계호근무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소장은 과감하게 입원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이 있는 한 검찰의 결정을 낙관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수술예정 전날인 25일 기자는 교도관에게 검찰에서 형집행정지가 내일 그러니까 수술날짜인 26일로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했습니다. 잠시 뒤 인터넷에 무기수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장이식수술이 가능하도록 검찰에서 형집행정지가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순간 동생과 사장, 교도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교도관을 만난 아버지는 “수술을 했는지 조차 못 느끼겠다”면서 “신장을 떼어 자식에게 주고나면 몸이 좀 가벼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술 전이나 후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등 뒤를 ㄱ자 모양으로 25센티 정도 절개했는데 어떻게 통증이 없었을까요? 그 깊은 상처를 어떻게 몸이 느낄 수 없겠습니까?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러했을 겁니다.

  아들 역시 얼굴이 좋아보였으나 마음은 무거웠니다. 교도관은 아들에게 “이번 수술은 단순히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는 아버지의 뜨거운 심장을 가슴속에 품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아픈 자식을 위해 신장을 떼어준 아버지는 퇴원하여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은 늘 아들의 몸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감형이 되어 출소한다면 부자지간은 2년 전 접견실에서 마주보며 낯설었던 서먹함이 아니라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서로의 가슴속에서 느낄 것입니다. 그때까지 형제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아버지 역시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에 임하겠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수형자의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교도관은 또다시 이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할까 말까 엄청 고민을 하겠지만 다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안 하고 후회를 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