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며칠 전에 인천의 새로 생긴 신도시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최근 집필 중인 생태경제학 시리즈의 1권이 '10대들을 위한 생태경제학'이라서 최근 일부러라도 10대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중이다. 하여간 '생태'라는 단어를 들어봤느냐고 물어봤는데, 어느 여학생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는데, 생선 이름이 아니냐고 했다. 아, 이 무슨 쌍팔년도 유머란담! 생태, 동태, 북어, 노가리, 명란젓까지, 생태의 일대기가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학생들이 책상을 치면서 웃어대는 통에 수습하느라고 한참을 애먹었다.

생태와 관련해서 내 기억에 가장 크게 남는 것은 올해 연초, 파리에 갔다가 마침 상원이 개원되는 날이라서 프랑스 국회에서의 개원초 의제를 정하는 논의를 TV에서 보게 된 기억이다. 파리 6대학은 퀴리부인 대학이라고 불리는 학교인데, 의대계열과 자연과학 계열들이 아주 강해서, 소위 '바크 쎄(C)'라고 불리는 공부 잘하는 10대들이 아주 선호하는 대학이다. 이 대학의 총장이 상원에 나와서 했던 연설은, '시티 카'라고 불리는 600cc 승용차 개발에 대해서 정부가 지원금을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위주로, 소위 생태적 전환에 관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이었다. 얘기인즉슨, 일본은 800cc에서 600cc로 넘어가는 전환점인데, 프랑스의 엔지니어들이 이 기술까지는 일본을 따라갈 수 있지만, 프랑스 소비자들이 일본 소비자들에 비해서 600cc를 선호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딱 그 차이만큼을 당분간 프랑스 정부가 좀 지원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이 시기가 되면, 결국 일본, 프랑스, 독일, 그렇게 3파전이 전개될 것인데, 프랑스 자동차산업이 붕괴하는 것을 프랑스 과학자들은 보고 싶지 않다, 그 정도 얘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조만간 이 기술경쟁에서 도태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논의가 열렸던 상원의 특별 세션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재경위 정도 되는 곳이었다.

나는 국회가 개원되는 것에서 국회 내부의 논의를 꽤 오랫동안 지켜볼 일이 있기는 했는데, 이런 논의는 본 적이 없고, 게다가 대학 총장이 직접 나와서 이렇게 세세하고 기술적인 것들에 대해서 상원의원과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볼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이걸 TV로 볼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좀 부럽기는 했다.

내 주변에도 검사나 판사, 혹은 경찰간부들이 있기도 한데, 이 40대 친구들과 가끔 모여서 '생태'에 관한 얘기를 하면, 그게 말은 좋기는 한데, 우리 시대의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50대와 얘기하면? 다 요즘 먹고 살만하니까, 배불러서 하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20대와 얘기를 나누면? 선생님, 취직준비 하느라고 힘들어죽겠는데, 요즘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래도 어느 정도 생태에 관한 얘기를 미래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현실에 관한 얘기로 같이 해볼 수 있는 한국의 집단은, 10대 정도이다.

나는 경제학자라서, 나에게 얘기를 듣고 싶어 모이는 사람들은 꼭 환경단체 회원이거나 생협 조합원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 더더욱 금융 얘기와 경제 전망 혹은 경제 구조에 관한 얘기를 할 일이 더 많은데, 그 중에 조금씩 끼워서 생태 얘기하는데, 이 얘기에 대한 반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일본이나 프랑스 혹은 러시아 친구들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거대한 '생태맹' 즉 생태적 색맹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솔직히 10년 후의 국제적 경쟁이, 심히 걱정된다.

최근 녹색성장에 대해서 코멘트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연설문과 관련된 문서 전문을 읽어봤는데, '생태'라는 단어는 한 마디도 없었고, 생태적 고려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생태적 감수성으로 중무장한 외국의 10대들과 한국의 10대, 앞으로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사실상 생태맹들인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