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남편을 살해해야만 했을까?
 
가끔 뉴스를 장식하는 폭력남편 살해사건 소식이 있지요. 대부분 사연을 들어보면 남편의 가정폭력이 상당기간 지속되어 왔고, 폭력의 강도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남편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고, 자식들에게도 혹독한 폭력을 휘두른 가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가정폭력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수시로, 무차별적으로 지속되어왔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가정폭력도 용납되지 않는 현실에서 장기간에 걸쳐 살림을 부수고 온갖 수모를 견디며 살다가 도저히 못 참고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된다’며 이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 바에는 왜 진즉에 이혼하지 않았을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폭력에 휘둘리다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은 가정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감내하며 살았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최후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것만이 폭력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다양한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또한 폭력피해자는 폭력가해자의 위세에 눌려 ‘노예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순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만이 이어도 표출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전쟁 후에 참전 군인들이 겪는 증상, 큰 사고 후에 겪는 증상이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_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입니다. PTSD는 지속적이고 충격적인 경험이나 심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겪은 뒤 이 기억을 반복해 떠올리는 과민상태가 계속되는 정신과적 질환입니다. 이러한 증상은 가정폭력을 겪은 여성들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남편의 존재 만으로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지 않는 살인

 남에게 가정폭력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가, 수사기관에 신고를 했다가 대충 무마되면 다가올 보복성 폭력에 두려워 신고도 도움도 청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폭력을 휘두르고 자는 남편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없어져야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는다.’ 결국 남편이 반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성은 집안의 가장을, 사랑하는 남편을, 자식의 보호자인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인간 같지도 않은 폭력가해자를 죽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든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잘 했다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만 누구든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현실은 부정하기가 어렵군요.

그런 여성의 대부분은 살인이라는 범죄와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맞바꾼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살인자가 되어 처벌을 받더라도 자식들만큼은 폭력가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모성’의 발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수용자들 가운데는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수형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폭력남편을 어쩔 수 없이 죽였다는 사실에 바람에 끔찍한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 사건이 뉴스에 올라오면 많은 사람들이 동정을 하고, 시민단체 등에서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졸지에 가해자가 된 여성을 정당방위내지는 양심수라 부르며 구명운동을 하고 나섭니다.

  ▣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이유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지속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했다는 정황을 보면 충분히 동정이 갈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한 남편을 향해 냉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은 법이고, 동정은 동정일 뿐입니다.

판결에 있어서 그러한 정황이 참작되기는 하지만 폭력남편을 죽인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무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폭력남편을 살해한 여성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형량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살해 여성이 정당방위가 될 수 없고 양심수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은 남편을 죽이는 시점 때문입니다.

여기서 따져야할 게 있습니다. 보통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다가 아내를 죽이는 경우에는 그보다 형량이 적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경우가 있을까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법은 법입니다. 판결은 법대로 하는 것이지 판사 개인의 감정이나 여론에 의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격성향이 강한 남성의 폭력행위는 ‘우발적’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계획’이라기보다는 우발적인 것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또한 아내를 죽게 했다고 하더라도 ‘죽일 의도는 없었다’는 정황이 성립하게 됩니다. 즉, 실수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정황이 다릅니다. 남편이 폭력을 행사할 때 저항하다가 남편을 죽게 했다면 우발내지는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남편의 폭력 앞에서 아무런 저항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대해 말했습니다. 의학적으로 PTSD는 분명 범죄의 정황을 이해하는 사유가 됩니다. 가끔 법원에서도 그러한 증상을 인정한 판결을 하기도 합니다만 아직 대법원에서 PTSD를 인정한 판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가정폭력의 피해는 끝이 없다

현행법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피해의 현재성’과 저항의 ‘상당한 이유’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폭력남편을 살해했더라도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 것은 피해여성들이 남편을 살해하는 시점이 ‘폭력을 당할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폭력남편살해 여성들은 남편이 잠들었거나 술에 취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법에서 따질 때는 우발적인 살인은 실수이고, 계획적인 살인은 고의에 해당되어 처벌 형량을 정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단 이런 경우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실수는 용서가 따를 수 있고 고의는 엄중히 혼나야 한다는 논리가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범죄자가 된 여성들은 서서히 잊혀집니다. 하지만 교도소에 갔다고 해서 그 여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응어리도 서서히 삭혀질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폭력남편을 살해하면서 폭력의 피해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그에 다른 죄책감에 시달리며 또 다른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신분으로 바뀌었지만 피해는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교정행정도 진일보하여 교도소가 좋아지기는 했다고 해도 교도소 안의 수형자가 사회에서와 같은 대우를 받지는 못합니다. 사회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도 어려운데 죄 짓고 벌을 받는 사람들에게까지 세금을 써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교도소에 가기 전에는 선량한 시민이었고, 출소 후에는 우리 곁으로 돌아와 함께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면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치유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예산이 뒤따른다면 되겠지만 아직은 그럴만한 형편이 아닌가봅니다. 역시 문제는 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