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 사고나 나버려라

자동차 경주장에서 멋진 레이서들과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를 보니 괜히 질투가 났다. “저거 콰악 사고나 나라….” 잠시 후 차가 코스를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또 다른 차가 달려왔다. 또 같은 생각을 했다. 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고가 났다. 신났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이봉주 선수가 출전했을 때 이봉주 선수가 좋은 성적을 올려주기를 기대하며 TV를 뚫어지게 봤다.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선두로 치고나와 잘 달리면서 이봉주와 거리가 벌어졌다. 어느새 봉주는 2위 그룹에서도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실 달리기는 결코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솔직한 경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흥분하면서 이봉주가 우승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떠들었다. “확 사고나 나버려라! 우리 봉주가 우승을 하게….” 그런데 진짜로 사고가 나고 말았다.

35㎞ 지점에서 느닷없이 주로에 뛰어든 아일랜드 출신 종말론 추종자 코르넬리우스 호런에게 떠밀려 리마가 넘어지고 만 것이다. 사상 초유의 ‘마라톤 테러’. 내 자신이 놀랐다. 나의 더러운 신통력(?)이 진짜 저주를 발한 것인가? 그건 분명 말(言)의 테러였다.

리마는 힘겹게 레이스를 재개했지만 그 사이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에게 선두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리는 리마의 아름다운 투혼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증명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국 나는 봉주를 위한 저주를 내린 것도 아니었다. 리마가 우승하지 못 한 것이 마치 내 탓처럼 느껴져 죄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리마를 넘어뜨린 호런과 다를 바 없는 테러범이었다.

■ 남의 성공을 소중하게 여기자

살다보면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겉으로는 칭찬하면서도 속으로는 못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실패가 내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성공이 나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 아닌데도 그 사람의 실패를 바라는 때도 있다.

술자리에서 하는 말 중에는 잘 된 사람을 칭찬하는 것보다 헐뜯고 깎아내리는 말이 더 많다. 아니면 바닥에 곤두박질 친 사람을 위로해주는 척 하면서 내심 그의 추락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분명 말의 테러범이다. 남 잘 되는 것을 질투하고 남을 씹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하며, 남을 긁어내리면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은 참 못난 인생이다. 자꾸 그러다가는 내가 잘 나갈 때 천벌을 받을 것 같아서 겁난다.

앞으로는 성공한 사람을 욕하지 말아야겠다. 좋은 말, 아름다운 생각을 하면서 남의 비운(悲運)을 빌기보다는 행운(幸運)을 빌어 그게 꼭 이루어지도록 해야겠다. 남이 잘 되어야 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고, 급할 때 돈이라도 꿀 수가 있다. 그래서 남의 성공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리마는 내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아울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술안주가 되어 테러를 당한 많은 분들께도 미안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