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격이 유순하고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아주 '지랄맞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유순해보이는 것은, 많은 경우 소수설의 지지자인 경우가 많아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에는 가만히 있는 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 잘 싸우지는 않지만, 싸우기 시작하면 '임전무퇴'인 경우도 많고, 내가 이끌었던 수많은 논쟁의 '전투'에서 전멸한 경우는 거의 없다.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좌파라서 그렇다. 수많은 극우파와 남성우월주의자 그리고 지역차별주의자들 앞에서 꼭 필요한 얘기 아니면 하지 않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좀 '지랄맞다'.

내가 정말로 지랄맞은 원칙을 지키는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남이 일단 쓴 개념을 내가 다시 쓰는 일은 어지간히 없기도 하거니와, 일단 누가 같은 분석을 한 번 한 분야서는 어지간해서는 들어가지 않는다. 회사에 있던 시절, 이것저것 자료를 주고 '짜깁기'하라고 했을 때, 너무 괴로웠다. 개인적으로 또 지키는 원칙이, "같은 글은 두 번 쓰지 않는다"와 "같은 강연은 두 번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학자 중에서는 잘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난 좀 지랄맞은 편이라서, 한 번 얘기한 것을 다시 얘기하지는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좋은 점은 딱 한 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는 것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내가 학자로 글을 쓰고 활동한 것이 박사 이후로도 벌써 13년이다. 그동안 어지간한 주제에 대해서는 한 번씩 글을 쓰거나 책을 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점점 소재와 분석수단이 빈곤해지는 것을 느끼기는 한다. 올해 마흔 살인데, 앞으로 20년 동안에도 같은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되는 순간, 은퇴하고 귀농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녹색경제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는 금년에 은퇴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이정전 교수가 10여년 전 처음 사용하였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정도에 해당하는 초록정치연대에서 정책실장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녹색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자고 하였었는데, 이미 사용된 것이고, 게다가 이정전의 개념이 너무 '속류적'이라는 이유로 그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녹색, 초록이라는 두 단어로 시작되는 개념들 중 내가 만든 것만도 수 십개가 된다. 초록정책, 초록지원단, 초록세제개편, 그런 것들이 많다. 성장으로 시작되는 개념 중에서 요즘 내가 사용하는 개념은 지식문화성장, 내포적 성장, 혹은 성장 패턴이라는 개념들이 있다.

8.15 대통령 축사에서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격세지감을 느꼈다. 김영삼의 청와대에 '환경 비전'에 대한 조언을 하고 보고서를 만들어준 이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두번씩은 내가 생각하는 생태적 국민경제 운용에 관해서 보고서를 제출했었다.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은, 좀 어색한 조합이기는 하다. 그러나 개념에 대해서 지적하지는 않고 싶다. 결국 김영삼의 환경비전 이후 정권이 4번째 바뀌면서 '녹색'이 이제 전면에 나서게 된 셈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참, '녹색'은 구 산업자원부의 공업규격에 의해서 표준말이 아니고, 지금은 '초록'이 규격에 맞는 용어이다. 그리고 자주개발과 원전 비중을 너무 높게 잡았다. 반갑기는 하지만,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라, 마냥 환영만 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