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개인적으로는 별로 생태적인 삶을 사는 편은 아니다. 하여간 나도 '주둥이만 생태주의자'에 가깝다는게 평소의 진단이다. 아파트를 약간 좁게 사는데, 가을쯤 이사를 가면 사방에 굴러다니고 산개된 책들을 모으기 위해서 좀 넓은 집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좀? 꽤 넓은 집으로 이사갈 예정이라서 '좁게 살기'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 같다. 차는 1,600cc로 작은 차를 타는 편이고, 기어도 아직 스틱을 고집하고 있기는 하지만, 운전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역시 생태적이라고 자부하기는 좀 그렇다. 게다가 마루에는 에어콘도 있고, 200와트짜리 파워앰프를 두 개씩 물려놓고 음악을 들으니, '좁게'와는 아직은 좀 거리가 멀다.

어쨌든 2년 후에는 귀농하겠다고, 요즘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중이기는 한데, 어떻게 된게, 정리한다고 생각한 다음부터 오히려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일이 더 많아졌다. 조용하고 단촐하게 살고 싶은데, 하여간 요즘 내 주변은 어수선하다. TV 카메라를 집 주변이나 내 동선에서 요즘 거의 매일 만나고, 기자들은 아예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충분히 어수선하게 살고 있으니, '좁게 살기'라고 말하기에 좀 뻘쭘하다.

작년에는 졸저 <88만원 세대>로 인하여 어지간한 대학에는 한 번씩 가서 강연을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의 20대의 분포도와 다양한 집단별 특징에 대해서는 좀 이해하는 편이라고 남들이 오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시도하는 것은 '10대들과 대화하기'이다. 특히 2008년의 한국 10대와 대화하는 것은, 내가 알기로는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시도인데, 하다보니까 올해 고등학교에서 했던 강연들과 직간접적으로 몇 년간 했던 시도를 통해서 나도 약간은 요령을 배운 것 같다. 한국의 10대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다. 특히 강연은 더 힘들다. 20대들도 안 그렇고, 성인들도 안 그런데, 일단 10대들은 3분도 안되어서 졸기 시작한다. 어지간하면 나도 강의 때 재우지 않는다고 자부심을 갖던 편인데, 10대들에게는 안 통한다. 2년 전, 절반 정도의 10대를 재운 적이 있었는데, 나도 가슴에 상처를 받았다. 어떻게 하면 졸지 않고 30분 정도 10대들의 주의력을 끌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것인가?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책을 읽게 하거나, 글을 읽게 한다?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계속 시도하는 중인데, 솔직히 성과가 좀 변변치 않다. 언젠가 <10대들과 대화하기>라는, 지금의 시도들을 모아서 책으로 낼까 생각 중이다.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라는 표현은, 연말쯤 출간 예정인 '10대들을 위한 생태학 입문' 정도의 부제를 달고 나갈 책의 제목을 위해서 만든 표현이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10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들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줄이다가 맨 마지막에 남은 문장이 이것이다. 우리에게 뭐가 문제인가? 내가 본 한국의 엘리트들 혹은 지배계층의 문제는 넓게는 사시는데, 생각이 대단히 좁다는 점이다. 많은 문제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제발 우리의 10대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희망이다. 그야말로, 희망사항이다.

요즘 20대의 엔트리카가 소나타급인데, 10대들의 엔트리카가 그렌저급이라는 조사를 보면서, 가슴이 무겁기만 하다. 에너지, 자원, 이런 것들을 한국에서 다루는 방식이 50대와 10대가 비슷한데, 이런 나라가 10년 후에 어떻게 될까? 그게 내 고민의 핵심이다. 말은 쉽다만, '잘난 척 하고 싶은 희열'을 도대체 누가 말리겠는가?

한전 사장님을 포함한 발전사 사장님들, 이 기회에 출퇴근하시는 관용차를 모닝으로 바꾸어보면 어떠실까? 기아 자동차의 정의선 사장이 개인적으로는 모닝을 탄다고 들었는데, 놀라웠다. '좁게'가 존경받는 시대가 곧 한국에도 올까? 그럴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