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이래저래 내가 소위 '에너지 밥'을 먹기 시작한지도 10년이 넘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솔직히 말하면 거대 기업 한전에서 몇 개의 발전회사들이 분화되었고, '한전 그룹'이라는 다소 어색한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 외에 이 10년 동안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 같지는 않다. 제주도 행원단지에 첫 풍력발전기가 들어갈 때, 이젠 세상 변한다고 했는데, 별 변화가 생기지 않았고, 예전 대관령 휴게소 근처의 삼양목장 자리에 독일 기술을 유치해서 풍력발전기를 달 때에도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했었는데, 별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일은 총리실에 있을 때, 내가 직접 처리했던 사업이었다.)

최근 내가 가장 참담한 기분을 느낀 순간을 얘기해보고 싶다. 때로 '요쇄형 주택'으로 분류하기도 하는, 하여간 한국 최고의 부자들이 산다는 몇 개의 주상복합 건물에 냉방시설이 가동되지 않으면 섭씨 60도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뭐한 것인가라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겨울철 냉방만 생각하다가, 요즘같이 찌는 듯한 더위에 수은주가 끝간 데 없이 올라가는 건물을 지어놓고, 하절기 대기전력율을 지켜보는 이 모습이 참담한 이유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법이나 규정 혹은 가이드라인 같은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정책을 만드는 위치에 있었고, 요즘도 이런저런 정책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건의하기도 하면서 여름철 냉방장치 없으면 화재의 위험마저도 생각해야 하는 이 유리 건물들을 보면서, 사실 민망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다.

자, 이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정부나 유관기관, 혹은 업체나 소비자 어느 한 곳에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에너지 업계에는 정보가 잘 순환되지 않고, 정부는 언제나 "유관기관과 유기적 협조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소비자들에게, "당신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라는 얘기만 하고, 시민단체와도 엄청난 장벽이 있었던 것이 사실 아닌가? 이제는 고유가 시대, 좀 정확히 말하면 '천연자원 희소성' 시대를 살게 될 것이고, 게다가 한국은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1975년 석유파동 이래 지속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꾸려왔던 국가들과는 좀 다른 방식의 정책 실패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나도 경제학자라서 가끔 한국경제 TV와 같은 경제단체에서 운용하는 케이블 TV 같은 곳에 출연하게 되는 일이 있기는 하다. 분명 큰 경제단체는 이런 홍보채널이 필요할 것이기는 한데, 그렇게 따지자면 내부의 토론을 위해서나 혹은 시민들에 대한 홍보를 위해서나, 아니면 선진국의 사례를 '그림'으로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의 경각심을 만들기 위해서나, 이런 TV 채널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바로 에너지 부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요즘 방송 시장의 개편 과정에서 여러분들도 주지하다시피, 나라가 아주 시끄럽다. 게다가 공공단체나 공공기관을 이 와중에 새로 만든다는 것도 만만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에너지 TV가 한국경제 TV 보다 필요성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성공사례가 필요하고, 국민들에게 더 많은 희망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전, 가스공사, 그리고 석유공사와 같은 에너지 주요 기관들이 출자하고, 에너지 업계들이 참여하여 케이블 TV 하나 운영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장이 작지는 않을 것 같다. 미디어의 시대, 더 많은 채널, 더 많은 그림으로 국민과 직접 대화하지 않는다면 10년 후 우리는 또 다른 후회를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웅변 대회의 추억처럼, 우리에게는 에너지 TV가 필요하다고, 이 연사 목놓아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