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서부발전이라는 한 발전회사의 비상임 이사가 된지 1년하고도 반년이 되어간다. 하여간 받는 월급보다는 더 내어놓겠다를 신조로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좀 '거시기' 하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에 오는 것 말고도 몇 번쯤 더 오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상대비교, 도대체 내가 이 회사에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가를 가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본다. 사실, 별 거 없다. 현대그룹이나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일하던 시절은 물론이고 총리실에 있을 때에도 늘상 대형 프로젝트를 몇 개씩 만들어내고, 법도 고치면 예산 꼭지도 새로 만들면서 수 백원짜리 신규 사업을 몇 개씩 만들던 시절과 비교하면, 사실 한 게 별로 없다. 밥값 못한다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것은, 정말 이번이 처음이다. 조그만 글 하나 쓸 때에도, 원고료보다는 잘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그야말로 자존심에 이만저만한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전경련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내가 비상임 이사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하면서 "야, 보험은 들었냐?"라고 물어봤다. 미국의 꽤 괜찮은 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름 자기 분야에서 밥값은 한다고 평가를 받는 친구이다.

어? 무슨 보험?

자식아, 경영 결정에 관여했다가 회사가 잘못된 경영으로 손해를 보면 이사들이 꽤 물어줘야 하는 거 몰라? 너, 잘못된 결정했다가 문제 생기면, 너네 부모님 집까지 다 팔아도 택도 없다. 이게, 경제학 공부를 한 거야, 만 거야. 보험부터 들어라, 임마.

물론 그리고 바로 회사에 물어봤더니 몇 년 전까지 이사들에게 그런 재보험을 들어주었는데, 감사원 지적을 받아서 없앴다고 한다. 혼자서 보험 든다고 해봐야, '웃기는 짬뽕' 소리 들을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기는 했다. 사실 주식을 통한 지배구조상, 한전도 자기 결정권이 거의 없고, 1차관, 2차관, 여기에 경제당국과 청와대의 눈치 보면서 이래저래 손실만 책임지는 처지에, 이사들이 무슨 엄청난 결정권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현재의 산업은행이 한전 경영에 무슨 일관성이 있을까? 그렇게 믿기지는 않는다. 한전도 그럴지언데, 한전 1인 주주라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기타 등등 많은 시어머니를 다 모시고 있는 소위 '자회사'의 의사결정이 무슨 법률적이며 절차적인 권한이 있겠다고 보험을 다 들어야 할까? 그래서 보험은, 안 들었다.

사실 내가 처음 에너지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 유가는 언제든지 10불로 내려갈 수 있는 수준에 있었고, 30불이라면 고유가라고 청와대에서 "대책을 내라"고 닦달하던 시절, 에너지관리공단에서 팀장으로 업무를 봤었다. 김대중 시절, 유가가 40불까지 갈지도 모른다고 관공서 5부제 도입하던 때, 지금 생각하면 참 꿈같은 얘기다. 그 시절, 우리들의 농담이 그랬다. 유가가 50불만 가면, 풍력발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래 기술들이 상용화단계가 되니까, 어떻게든 그걸 기준으로 기술개발을 해야 합니다! 나는 청와대에 그렇게 보고했다.

자, 첫 얘기로 돌아와 보자. 연말 유가가 150불인가, 200불인가, 이것에 대해서 예상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요즘 나는 전경련의 친구 조언대로, 진짜로 보험을 들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전전긍긍한다. 사실 유가 200불짜리 '콘틴전시 플랜', 보험 드는 마음으로, 지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세상 일, 모른다. 전력그룹사에 포함된 회사들의 경영진들, 나의 전전긍긍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