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여수 국가산업단지 정전사태는 수용가의 전력설비 관리가 얼마나 취약하고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방치된 노후 전력설비, 관리 미흡, 무관심과 관련기술의 무지 등 정전사고가 발생할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췄다. 여수 산단 정전은 전력설비를 방치하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다. 60~70년대 개발연대기에 설치된 전기 설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공단과 기업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이는 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2의 여수 산단 정전의 인재(人災)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수용가 구내 설비 고장에 따른 파급정전 건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증가 추세를 보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자체 관리 소홀로 인한 정전은 자업자득의 결과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파급 정전을 일으켜 다른 수용가에게도 뜻하지 않은 큰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다. 흔한 말로 ‘독박’만 쓰는 게 아니라 ‘민폐’까지 끼치는 것이다. 이번 여수 산단 정전만 하더라도 피뢰기 파손사고로 공급선로가 막혀 2개 공장이 10시간 18분간  정전됐고, 사고 당시 전압 강하 현상으로 인근 6개 공간이 연달아 정전 피해를 입어 피해 액수만 수천억 원대에 달한다.

고품질의 전기를 바라는 국민의 욕구와 요구는 어느 때 보다 높다. 최근 반도체산업 유화산업 등 장치산업이 급속히 확장되고 첨단 IT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전기 사용 규모가 커지고 전기품질에 민감한 부하가 크게 늘었다. 순간적인 전압강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조 장치를 도입하는 건수와 사용 빈도가 많아지면서 높은 수준의 전기품질에 대한 기대치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환경변화는 수용가에게도 훨씬 더 까다로운 관리 시스템을 요구한다.

다행히 지난해 삼성 기흥공장 정전사태 이후 GS칼텍스 등 10여개 기업이 선로를 복선화하고 전압보상장치를 설치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하지만 대다수 수용가는  고품질 전기를 향유할 수 있는 준비 태세가 여전히 초보단계다. 아직도 눈앞의 생산설비를 돌리는 데만 급급해 전력설비 관리나 보강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게 현실이다. 66KV이상 전력을 공급받는 수용가중 80%가량이 아직까지 예비 회선을 두지 않고 1회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전문가들은 대다수 생산 공장이 전력설비 운영이나 관리측면에서도 취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기업체는 생산중단을 꺼려 생산설비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전력설비를 적기에 점검하고 보강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정전 발생 개연성이 상존(常存)하다는 것이다.

정전을 막는 ‘보험’은 설비에 선행 투자하는 것이다. 전력설비도 오래되면 자동차 부품처럼 고장날 확률이 높아져 제 때 유지 보수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전력설비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마인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비 개선에 대한 현장 기술진들의 인식은 바뀌고 있지만 최고경영자의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불량설비를 적기에 바꾸고 수용가 스스로 전기사용 환경을 개선하는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고품질의 전력을 희구하는 만큼 수용가도 기본적인 사용자 책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정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변압기 피뢰기 등 전력설비에 대해 권장사용연한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전력설비를 발견하고도 시설개선을 권고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단순 권고는 비용을 줄이고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논리에 밀려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 권장사용연한을 제도적으로 강제할 필요성이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몸에는 좋은 법이다. 기업도 규제완화 논리로 맞설 것이 아니라 차재에 자체 전력설비를 새롭게 개선하는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