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태풍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공기업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여당, 청와대 핵심부가 동시다발적으로 참여정부 인사의 퇴출을 요구한데 이어 최근 또다시 각 부처에 퇴출대상 기관장 명단을 제출토록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공기업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 특정인을 솎아내기 위한 포석이 깔린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가 진행되면서 물갈이 대상으로 찍힌(?) 공기업의 직원들은 일손이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감사 강도의 수위 정도에 따라 장의 퇴진이 결정될 거라는 예측이 난무한다. 상층부의 권력지도의 변화에 민감한 공기업 임원들은 정권의 기상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해당 기관장이 청와대 ‘살생부’에 올라 사표를 써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나 이미 사표를 제출했다는 풍문이 도는 가운데 감사장으로 향하는 공기업 임직원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더욱 볼썽사나운 것은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장관들까지 나서 ‘노(盧)의 사람들’의 퇴진을 압박하고 해당 기관장이 이에 맞서 버티는 현재의 상황이다. 한쪽은 이명박 정부의 지향점이 다르고 코드가 맞지 않는 기관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한 후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반대편은 낙하산 인사의 전초전이며 임기제를 무력화하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눌러앉기’와 ‘독선’의 논리가 충돌하는 양상은 역대 정권 교체기에는 없었던 풍경이다. 일반적으로 정권 교체 후에는 의례히 ‘사람갈이’가 관례처럼 행해졌지만 청와대와 여당, 장관이 전면에 나서 ‘인적 청산’을 주장하고 일방적으로 사퇴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주도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어느 나라나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사람교체가 이뤄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그러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인사의 ‘쓰나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후진적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을 달래거나 집권에 도움을 준 인사들에게 전리품처럼 자리를 나눠주는 것은 구시대적 행태다. 정권교체 때마다 코드인사를 빼낸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코드인사가 단체로 입장하는 악순환은 지양
해야 한다. 현재시점에서 ‘싹쓸이 인사’의 전망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섣부른 예단이지만 현 정권의 인사 스타일이나 ‘눈캄를 보지 않는 ‘저돌성’을 감안하면 개연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삼가야 할 것은 공기업의 수장을 임기에 관계없이 물갈이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잣대로 공기업 수장의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임기제 아래 임기가 남아 있는 공기업 인사는 그 임기를 보장해 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기관장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퇴진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임기가 보장된 공기업 사장을 일방적으로 원외(圓外)로 밀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기업 기관장의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 받는다. 임기 보장의 법적 정신은 독립성, 중립성, 책임경영에 있다. 공기업 기관장의 임기는 정권교체와는 상관없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적 접근법의 맥락에서 공기업을 봐서는 안되며 정치논리에 의한 수장 교체는 조직 내부의 혼선을 빚을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하며 또 다른 비효율을 초래한다. 물론 현 정권의 국정운영 노선에 반대하거나 무능한 사람이 임기제를 무기삼아 자리에 연연하는 것도 모양새가 궁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의 합의과정을 거쳐 집권 정부의 통치철학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기관장은 법을 바꿔 임기제를 없애는 것도 정치논쟁의 소모전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정권교체 초창기에는 ‘인사가 만사(萬事)’라며 임기를 시작하지만 ‘인사가 망사(亡事’)로 흘러 국정운영이 꼬이고 결국 정권의 실패로 귀결된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한 때 이명박 정부를 열렬히 지지했던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인사문제가 앞자리를 차지한다. 장차관 등 행정부 요직에 특정 지역 계층이 소외돼 ‘정소영’, ‘강부자’ 등으로 표현되는 인선 파동의 실망감이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세력이 ‘10년의 한‘을 싹슬이 인사로 종착점을 찾는 것은 이명박 정부나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교사의 묘미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덕목에 있다.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결국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진 노(盧)정권의 국정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